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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에서 평형 세계

일본 영화에서 로맨스 장르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특유의 섬세하고 서정적인 감수성을 바탕으로, 현실에서는 쉽게 일어나기 어려운, 때로는 애틋하고 때로는 환상적인 세계를 스크린 위에 펼쳐내곤 하죠. 이러한 영화들은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과 여운을 남기며 오랫동안 사랑받곤 하는데, 그중 상당수가 탄탄한 스토리를 자랑하는 일본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독자들에게 이미 검증받은 이야기를 아름다운 영상미와 배우들의 열연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이죠.
하지만 영화 <나를 모르는 너와 헤어지는 법> (원제: 私が知らないあなたと別れるまで)은 기존의 일본 로맨스 영화들과는 조금 다른 출발점을 가집니다. 이 작품은 소설이 아닌, 2019년 프랑스-벨기에 합작 영화 <러브 앳 세컨드 사이트 (Love at Second Sight, Mon Inconnue)>를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국내에는 <러브 세컨드 사이트 시작은 첫사랑의 끝에서>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는 이 영화가 원작이라는 사실은 다소 생소하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원작을 접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 영화를 감상한다면, 마치 처음부터 일본 영화로 기획된 작품처럼 느껴질 만큼 특유의 감성이 물씬 풍겨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는 아마도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양지의 그녀> 등 수많은 로맨스 명작을 탄생시킨 미키 타카히로 감독의 연출력 덕분일 것입니다. 그의 작품들에서 일관되게 보여주는 영상미와 감정선을 섬세하게 다루는 연출 방식이 이번 작품에도 고스란히 녹아들어, 국적을 초월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도 일본 로맨스 영화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남자 주인공 '리쿠' 역은 일본의 인기 아이돌 그룹 Sexy Zone의 멤버이자 배우로 활발히 활동 중인 나카지마 켄토가 맡았습니다. 그는 이미 다수의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았으며, 국내 팬들에게도 낯익은 얼굴입니다. 여자 주인공 '미나미' 역에는 싱어송라이터로 높은 인지도를 자랑하는 milet(미레이)이 캐스팅되었습니다. 이번 작품이 그녀의 본격적인 연기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래서인지 연기 톤이나 표정에서 간혹 미세한 어색함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신선한 매력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특히 그녀의 본업인 가수로서의 면모가 극중 캐릭터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부분은 인상적이었습니다.
나카지마 켄토는 특유의 부드러운 이미지와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한국 관객들에게도 어느 정도 인지도를 쌓아온 배우입니다. 극중 남자 주인공 '리쿠'와 여자 주인공 '미나미'는 캠퍼스 커플로, 풋풋한 설렘과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했던 시절, 리쿠는 자신의 꿈을 담아 소설을 써 내려갔고, 미나미는 그런 리쿠의 곁에서 그의 첫 번째 독자가 되어주며 사랑을 키워나갑니다. 통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미나미의 모습에 리쿠가 첫눈에 반하게 되고, 두 사람은 서로의 꿈을 응원하며 아름다운 관계를 이어갑니다.
리쿠가 밤새워 쓴 첫 소설 원고를 미나미가 설레는 마음으로 읽어주는 장면은 두 사람의 관계에서 매우 상징적인 순간입니다. 리쿠에게 미나미는 단순한 연인을 넘어, 자신의 작품 세계를 가장 먼저 이해하고 지지해 주는 유일한 존재였던 것이죠. 그 기쁨과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후 리쿠는 발표하는 소설마다 100만 부 이상 판매고를 올리는 초특급 인기 작가로 발돋움하지만, 반대로 미나미는 자신의 꿈이었던 음악을 접고 가정주부의 삶을 선택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각자의 영역에서 서로를 응원하며 함께 노력했지만, 리쿠의 눈부신 성공 뒤에는 미나미의 보이지 않는 희생과 양보가 있었던 셈입니다.
영화의 초반부는 이러한 두 사람의 만남부터 결혼, 그리고 관계의 변화까지의 과정을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압축적인 몽타주 시퀀스로 보여줍니다. 마치 한 편의 아름다운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한 이 장면이 끝나고 나면,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듭니다. 어느 날, 리쿠가 잠에서 깨어난 후 자신이 알던 세계와는 모든 것이 뒤바뀌어 버린 평행 세계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이 바뀐 세계에서 리쿠는 더 이상 인기 작가가 아니며, 미나미에게 자신이 쓴 소설을 보여주기는커녕 제대로 된 대화조차 나누지 못하는 서먹한 관계가 되어 있습니다. 특히 이전 세계에서 성공에 도취되어 미나미의 감정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던 리쿠의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어딘지 모르게 그의 마음이 이미 변해 있었음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리쿠가 떨어진 또 다른 평행 세계에서, 놀랍게도 미나미는 일본 최고의 슈퍼스타 가수가 되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습니다. 반면, 리쿠는 그녀의 팬이자 작은 출판사에서 근무하는 평범한 편집자로 살아가고 있죠. 이 세계에서는 두 사람이 과거에 만났던 인연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각자 전혀 다른 삶의 궤적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낯설고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리쿠는 자신이 원래 있던 세계, 즉 미나미와 부부였던 세계로 돌아가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을 품게 됩니다.
주인공 리쿠가 소설가라는 설정은 영화의 서사 전개 방식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마치 소설의 구성 단계처럼 기승전결의 흐름을 명확하게 보여주려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드라마 장르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감초 캐릭터가 극의 활력을 불어넣는데, 이 영화에서는 배우 키리타니 켄타가 연기한 '케이스케'가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냅니다. 케이스케는 리쿠의 학교 선배이자 평행 세계에서는 출판사 직장 동료로 등장하여, 황당무계하게 들릴 수 있는 리쿠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고 그를 물심양면으로 돕는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줍니다. 특히 아무런 접점도 없는 슈퍼스타 미나미와 리쿠를 연결해 주기 위해 노력하는 그의 모습은 유쾌함과 동시에 뭉클함을 선사합니다.
 

변경된 세계에서 리쿠의 삶은 이전과는 정반대로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누렸던 명예와 사람들의 환호는 온데간데없고, 그저 그런 평범한 회사원으로서의 일상을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에 직면합니다. 반면, 미나미는 감히 다가서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눈부신 성공을 거둔 일본 최고의 스타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극명한 대비는 리쿠에게 더욱 큰 상실감과 함께 이전 세계에 대한 그리움을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이처럼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리쿠는 우연히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만약 자신이 원래 세계로 돌아가 다시 인기 작가의 삶을 살게 된다면, 그 세계의 미나미는 또다시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평범한 가정주부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다시 부부로서 함께할 수 있겠지만, 과연 그것이 미나미의 진정한 행복을 위한 선택일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과 마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빛나는 미나미를 보며, 그녀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과 자신의 행복을 되찾고 싶은 이기적인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리쿠의 모습은 관객들에게도 많은 생각을 안겨줍니다.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일까?" 영화를 감상하는 내내 이러한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만약 리쿠가 이전 세계로 돌아간다 해도, 현재의 모든 기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살아간다면 그것 또한 그에게는 큰 고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빛나는 모습을 다른 세계에서 목격한 기억은 평생 그를 괴롭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이러한 복잡한 감정과 딜레마에 대해 섣부른 판단을 내리기보다는, 주인공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슬기로운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잔잔한 감동과 함께 마무리됩니다. 진정한 사랑과 희생, 그리고 행복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곱씹어보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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