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과 이혜영 배우의 액션!!

영화의 제목 '파과'는 처음 들었을 때 다소 생소하게 느껴져 호기심을 자아냅니다.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깨진 과일' 혹은 '흠집 난 과일'을 의미하는데, 작중에서는 약간 썩거나 상처 입었지만 속은 멀쩡하여 맛에는 변함이 없는 과일에 비유됩니다. 이는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날카로운 칼날을 품고 있는 주인공 '조각'의 상황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탁월한 제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파과'가 '이팔청춘(16세)'을 의미하는 또 다른 해석도 존재하는데, 이는 젊고 강렬했던 과거의 '손톱' 시절과 현재의 '조각'을 대비시키며 세월의 흐름과 변화라는 주제를 함축합니다. 이처럼 중의적인 의미를 담은 제목은 영화의 깊이를 더하며 관객의 흥미를 유발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영화 '파과'는 구병모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합니다. 탄탄한 서사와 독창적인 캐릭터 설정으로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은 이 소설은 그 매력을 인정받아 영화뿐만 아니라 뮤지컬로도 제작되었습니다. 특히 2024년에는 뮤지컬이 초연되었는데, 영화와 뮤지컬이라는 다른 매체가 거의 동시에 같은 원작을 선택했다는 점은 이야기 자체가 지닌 힘과 대중적인 잠재력이 얼마나 큰지를 방증합니다. 각색 과정에서 매체별 특성에 맞게 어떤 차이점을 보일지 비교하며 감상하는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 될 것입니다.

영화의 중심에는 60대 여성 킬러 '조각'이 있습니다. 배우 이혜영이 연기하는 조각은 40년 동안 '방역'이라는 이름 아래 사회의 해충 같은 존재들을 처리해 온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비록 정확한 나이는 명시되지 않지만, 오랜 경력과 희끗한 머리, 세월의 흔적이 엿보이는 외모는 그녀가 삶의 황혼기에 접어들었음을 짐작게 합니다. 70대가 킬러로서 활동하기는 육체적으로 어렵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을 깨고, 조각은 여전히 조직의 의뢰를 받아 임무를 수행하는 노련한 현역입니다. 그녀가 처음부터 '조각'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젊은 시절, 그녀는 '손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더욱 냉혹하고 날렵한 킬러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이 '손톱' 시절은 영화 <마녀 2>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배우 신시아가 맡아 연기합니다. 신시아는 최근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 같은 다른 장르의 작품에도 출연했지만, <파과>에서는 <마녀 2>에서 보여준 그 차갑고 위협적인 분위기를 다시 한번 선보이며 '손톱' 캐릭터에 대한 기대감을 높입니다. 조각과 손톱, 동일 인물의 다른 시간대를 두 배우가 어떻게 그려낼지 지켜보는 것이 중요한 관전 포인트입니다.

평온하지만 고독하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던 조각의 세계에 균열을 일으키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바로 배우 김성철이 연기하는 젊고 야심만만한 킬러 '투우'입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듣보잡' 같은 존재지만, 그의 살인 능력은 가히 압도적입니다. 목표물을 처리하는 방식은 정확하고 확실할 뿐만 아니라, 필요 이상으로 잔인하고 과시적인 면모까지 보입니다. 그의 이런 능력과 잠재력을 알아본 조직의 관리자 '손실장'(김강우 분)은 그를 스카우트합니다. 

문제는 투우가 조직 내 모든 이들이 존경심을 표하는 전설적인 존재, 조각에게 알 수 없는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입니다. 은밀함과 신중함이 생명인 킬러 세계의 불문율을 깨고 조각에게 도발적인 태도를 보이는 투우의 등장은 조직 내부에 팽팽한 긴장감을 불어넣고, 앞으로 벌어질 피할 수 없는 충돌을 예고합니다.

수십 년간 철저하게 감정을 배제하고 타인과 거리를 두며 살아온 조각에게 예상치 못한 변화가 찾아옵니다. 어느 날, 동네를 배회하는 늙고 병든 개를 발견한 조각은 연민을 느끼고 동물병원으로 데려갑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다정하고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수의사 '강선생'(연우진 분)을 만나게 됩니다. 강선생의 꾸밈없는 친절과 그가 보여주는 생명에 대한 존중은 얼음장 같던 조각의 마음에 작은 파문을 일으킵니다. 늙은 개에게 '무용'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보살피며, 강선생과 짧은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조각은 아주 조금씩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처럼 인간적인 감정에 눈뜨게 되는 순간은 그녀에게 가장 큰 약점이자 치명적인 위기의 단초가 됩니다. 조각이 지켜야 할 것이 생겼다는 사실은 곧 그녀를 노리는 이들에게 공격할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조각과 투우, 두 킬러의 대립 구도를 중심으로 숨 가쁘게 전개됩니다. 단순히 신구 세대의 갈등이나 조직 내 권력 다툼처럼 보였던 둘의 관계 이면에는 사실 오래전부터 얽혀있던 깊은 인연과 '은원관계(恩怨關係)', 즉 은혜와 원한이 복잡하게 얽힌 사연이 숨겨져 있음이 밝혀집니다. 투우가 조각에게 품고 있던 강렬한 적개심의 근원이 드러나면서, 두 사람의 대결은 더욱 극적이고 처절한 양상을 띠게 됩니다. 조각에게 투우는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의 한 조각이었을지 모르지만, 투우에게 조각은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든 존재였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과연 두 사람 사이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으며, 이들의 피할 수 없는 마지막 싸움은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까요?

두 사람의 대립이 극으로 치닫는 과정에서, 관객은 묘하게도 조각과 투우 사이에서 마치 '엄마와 아들' 같은 복잡미묘한 감정의 기류를 느끼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는 단순한 적대감을 넘어선, 어쩌면 일그러진 형태의 애증이나 연민, 혹은 모성애와 같은 원초적인 감정이 두 인물 사이에 흐르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서로를 죽여야만 하는 숙명 속에서도 언뜻 비치는 인간적인 고뇌와 감정의 편린들은 '파과'를 단순한 액션 누아르 영화 이상으로 만드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파과'에서 배우 이혜영의 열연은 단연 압권입니다. 실제로 60대인 그녀는 이 작품을 위해 고난도의 액션 연기를 직접 소화했으며, 촬영 중 갈비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촬영을 강행하는 투혼을 보여주었습니다. 심지어 한쪽이 부러진 상태에서 다른 쪽 갈비뼈마저 부상을 당할 정도로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를 펼쳤다고 하니, 작품에 대한 그녀의 열정과 프로 정신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60대 여배우가 극의 중심에서 강렬한 액션을 선보이는 것은 한국 영화계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며, 이혜영은 '조각'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나이와 성별의 한계를 뛰어넘는 독보적인 카리스마와 존재감을 증명합니다.

영화 '파과'는 그 자체로도 매력적인 이야기를 선사하지만, 동시에 더 넓은 세계관으로 확장될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손톱'의 활약상을 그린 프리퀄이나, 영화 이후 조각의 또 다른 여정을 다룬 시퀄, 혹은 조직의 다른 킬러들이나 '방역' 시스템 자체에 초점을 맞춘 스핀오프 시리즈나 드라마 제작도 충분히 가능해 보입니다.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독특한 세계관 설정은 다양한 형태의 후속 콘텐츠 제작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며, '파과'가 하나의 성공적인 프랜차이즈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을 엿보게 합니다. 시들지 않는 전설 '조각'의 이야기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귀추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