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또 다른 코로나 창고 영화 개봉

사랑이라는 감정을 뜨거운 열병에 비유한 영화 '바이러스 사랑'이 오랜 기다림 끝에 관객들을 찾아왔습니다. 이 영화는 2019년에 이미 촬영을 마쳤으나,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개봉이 잠정적으로 연기되었던, 이른바 '코로나 창고 영화' 중 하나입니다. 당시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로 인해 수많은 한국 영화들이 완성된 채 빛을 보지 못하고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 놓여야 했습니다.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의 창고 영화들이 속속 개봉하는 것을 보면, 당시 한국 영화계가 얼마나 활발하게 작품들을 제작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팬데믹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신규 영화 제작이 다소 주춤한 현시점에서 이러한 과거의 작품들이 개봉 기회를 얻는 것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영화 '바이러스 사랑'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지점은 배우 손석구의 존재감입니다. 영화 촬영 당시만 해도 손석구는 대중적 인지도가 지금처럼 높지 않은, 가능성 있는 조연 배우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나의 해방일지', '범죄도시2' 등 다수의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폭발적인 인기와 독보적인 캐릭터를 구축하며 현재는 출연 배우들 중 가장 높은 인지도와 스타성을 자랑하는 배우로 성장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영화 홍보 과정에서 그를 단순히 '조연'으로만 표기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랐을 것이며, 그의 중요성을 부각하는 여러 장치가 마련된 듯 보입니다. 실제로 영화 속 그의 출연 분량은 주연급에 미치지 못할 수 있지만, 이야기의 모든 사건을 촉발하는 핵심적인 인물 '남수필' 역을 맡아 '씬스틸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냅니다.

영화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바이러스'는 이야기의 중심 소재입니다. 남수필이 연구하던 이 바이러스는 우울증 치료를 목적으로 개발 중이었으나, 예기치 않게 그 자신이 감염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바이러스'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어감과 민감성 때문에 영화의 개봉은 더욱 지연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인간의 감정 스펙트럼에서 우울과 행복은 종종 상반된 극단에 놓인 것처럼 여겨집니다. 물론 두 감정 모두 인간에게 필요하지만, 우리는 본능적으로 우울보다는 행복을 추구하려 합니다. 영화는 이러한 감정의 대비를 흥미로운 방식으로 풀어냅니다. 배두나가 연기한 '옥택선'은 소개팅 자리에서 남수필을 처음 만납니다. 연구원인 남수필은 급한 일이 생겼다며 제대로 된 대화도 나누지 못하고 황급히 자리를 떠납니다. 

하지만 그날 저녁, 옥택선의 어머니의 주선으로 다시 만난 남수필은 오후와는 180도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이전의 어색하고 주눅 든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극도로 해맑고 넘치는 에너지로 옥택선에게 심지어 결혼하자는 이야기까지 건넵니다. 이는 그가 자신이 연구하던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몸에 반점이 생기는 부작용과 함께, 감염자의 텐션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지고 평소 호감을 가졌던 이성에게 맹목적인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남수필은 감염 사실을 깨닫고 옥택선에게 김윤석이 연기한 '이균'을 찾아가라고 말합니다. 이 사실이 연구소에 알려지면서 접촉자들을 격리하려는 추격전이 벌어지고, 옥택선은 이균의 도움과 자동차 세일즈맨이자 과거 호감을 가졌던 '김연우'(장기하 분)와 함께 탈출하게 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바이러스 치료 후에는 감염 기간 동안 자신이 했던 격정적인 행동과 감정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설정입니다. 영화는 이처럼 바이러스를 매개로 한바탕 유쾌한 소동극을 펼쳐 보입니다.

이 영화의 원작은 이지민 작가의 소설 <청춘극한기>입니다. 독특한 캐릭터와 설정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영화는 원작의 매력을 스크린에 옮기고자 했습니다. 특히 가수 장기하를 김연우 역으로 캐스팅한 것은, 캐릭터의 이미지와 장기하 본연의 개성이 잘 부합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랑에 빠지면 우리는 종종 평소와 다른 말과 행동을 하곤 합니다. 때로는 자기 자신도 놀랄 만큼 대담해지거나 감정적으로 변하며, 이러한 변화를 통해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기쁨을 느끼기도 합니다. 영화 '바이러스 사랑'은 이러한 사랑의 열병 같은 측면을 바이러스라는 극적인 장치를 통해 보여줍니다. 어쩌면 영화는 '누군가를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경험'이야말로 우울감을 잠시나마 잊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동기가 될 수 있다는 판타지적 질문을 던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바이러스 사랑'은 거대 담론을 이야기하거나 깊은 철학적 성찰을 요하는 영화라기보다는, 독특한 설정과 배우들의 개성 있는 연기가 돋보이는 가벼운 소품 같은 작품입니다. 특히 배두나, 손석구, 김윤석, 장기하 등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 배우들의 앙상블을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비록 큰 흥행을 기록하지는 못할지라도, 독특한 로맨틱 코미디와 배우들의 팬이라면 충분히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영화로 기억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