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로비 블랙코미디

하정우의 세 번째 감독 작품인 <로비>는 그의 다재다능함을 다시 한번 입증하는 영화입니다. 배우로서의 활약뿐만 아니라 그림을 그리고 영화 연출까지 섭렵한 하정우의 행보는 흥미롭습니다. 이전 두 편의 연출작이 큰 흥행을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그만의 독특한 색채를 담아내며 꾸준히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번 작품 <로비>는 전작 <롤러코스터>와 유사한 블랙코미디 장르입니다. 대놓고 웃음을 유발하려는 코미디라기보다는, 역설적인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유머를 통해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합니다. 영화 제목에서부터 풍기는 뉘앙스처럼, '로비'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아이러니와 풍자가 영화 전반에 깔려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로비는 나쁜 행위로만 그려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시도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복잡한 의미를 내포합니다. 이를 단순한 만남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의도적인 로비로 볼 것인지는 모호하게 남겨지며, 관객들에게 해석의 여지를 줍니다. 하정우가 연기한 윤창욱은 스타트업 대표로서 국책 사업을 따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입니다.

윤창욱이 목표로 하는 사업은 무려 3조 원 규모로, 국토교통부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경쟁자인 손광우(박병은 분)와 대립하게 됩니다. 윤창욱은 국토교통부 실장을 설득하려 하고, 손광우는 국토교통부 장관을 목표로 삼습니다.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로비를 시도하며 사업을 따내기 위해 치열하게 맞붙습니다.

특히 영화에서는 골프가 로비 장소로 자주 활용되는 한국 사회의 독특한 문화를 조명합니다. 골프를 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일 수 있지만, 영화를 통해 그 이유를 알게 됩니다. 긴 시간 동안 함께 걸으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골프 특유의 환경은 로비에 최적화된 장소처럼 보입니다. 상대방의 기분을 맞추고 설득하는 과정이 영화 속 주요 장면으로 등장합니다.

골프라는 스포츠가 가진 정정당당함과는 달리, 영화에서는 이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골프 공이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먼저 간 사람이 결과를 조작할 수 있다는 설정은 흥미롭습니다. 이러한 장면들은 실장의 기분을 좋게 만들기 위한 윤창욱의 노력이 얼마나 치밀한지를 보여줍니다.

여기서 프로 골프 선수 역할로 강해림이 연기한 진세빈이 등장합니다. 그녀의 자연스러운 골프 폼과 연기는 실제 프로 선수처럼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연기가 살짝 어색해 보이는 부분조차 캐릭터와 잘 어울려 더욱 몰입감을 높였습니다. 강해림은 넷플릭스 드라마 <썸바디>에서도 독특한 존재감을 보였던 배우로, 이번 작품을 통해 앞으로 다양한 작품에서 활약할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은 인간 본성을 숨기지 않고 드러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리낌 없이 행동하는 모습들은 때로는 불편하면서도 현실적입니다. 특히 각 배우들의 개성 넘치는 연기는 영화의 몰입도를 높이며 캐릭터들 간의 갈등과 유머를 더욱 돋보이게 만듭니다.

영화는 예상외로 박진감 넘치는 전개를 보여줍니다. 처음에는 가벼운 소품 같은 느낌으로 시작하지만, 점차 진지하고 몰입감 있는 이야기로 관객들을 끌어들입니다. 하정우 조카 역할로 등장한 배우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신인인지 필모그래피조차 찾기 어려웠습니다. 마지막 반전 역시 이 조카 캐릭터가 중심에 서며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하정우는 이번 작품에서 감독뿐만 아니라 각본과 주연까지 맡으며 자신의 색깔을 확실히 드러냈습니다. 그의 연출 스타일은 우디 앨런과 비슷하다는 느낌마저 들게 합니다. 비록 대중적인 흥행에는 한계가 있을지 모르지만, <로비>는 독특한 매력과 보는 재미를 충분히 제공하는 작품으로 기억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