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토끼처럼 귀를 기울이고 당신을 들었다 - 산문집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읽으면서 산문집이라는 단어가 떠 올랐다. 과연 산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궁금해졌다. 어떤 연관성이 있으니 산문이라는 단어가 떠 올랐을 것이다. 찾아보니 산문은 외형적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문장으로 쓴 글을 의미한다. 그 범위 안에는 소설과 수필도 포함된다. 이렇게 보면 단순하게 시를 제외한 모든 글은 산문이라 표현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한다. <나는 토끼처럼 귀를 기울이고 당신을 들었다>는 수필이다. 그럼 더이상 말은 필요없다. 그래도 산문이라 표현하면 좀 더 있어 보인다고 할까. 굳이 수필이라고 하면 될텐데 자꾸 산문이라는 단어를 끄집어 내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은 수필이라 하면 어딘지 부담없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지칭한다는 편견이 있다. 사람마다 읽는 책이 다르게 받아들여질테지만 나에게 이 책은 수필로 읽히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자꾸 산문이라는 단어를 책에서 떠오르는 단어로 연결시키는 중이다. 게다가 책에 나오는 그림도 비슷한 느낌이다. 편하게 볼 수 있는 그림이 아니다. 불편한 마음으로 글을 읽고 그림을 감상한다는 의미는 단연코 아니다. 분명히 그건 아닌데 읽는게 어려웠다. 어렵다기 보다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게 참 이상했다. 어려운 단어가 나열된 글도 아니고 어려운 수준의 책도 아니다. 침대에 누워 편안하게 베개로 각도를 잡고 베고 누워 책을 펼치고 나른하고 몽롱한 자세로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책을 읽을 수 있는 책이라 여기며 읽었던 책이, 딱딱한 의자에 허리를 꼿꼿이 세워 엉덩이 끝을 의자 직각에 맞춘후 책을 집어 들어 정 자세로 읽어야 할 책이라는 자각이 나를 긴장하게 만들어 그런가 보다. 책 제목처럼 토끼처럼 귀를 기울이고 책에 집중해야 작가인 황견선의 글을 들을 수 있나보다. 책 내용에 "귀를 기울이면, 당신이 걸어가는 길이 들린다."가 나온다. 책 제목인 당신을 들었다라는 의미가 궁금했다. 귀를 기울이고 당신을 들었다. 여기서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