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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스러운
것이 싫다. 안정되고 정돈되어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좋다. 문을 열고 집에 들어왔더니 집 안이 온통 온갖 잡동사니로 널부러져있다면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 돈 받고 청소하는 사람도 싫어할 것이다. 책상이 어지럽게 펼쳐져있다면 책상의 주인은 거의 대부분 부모에게 혼난다. 공부를 잘
하는 친구들은 책상이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다. 씽크대에는 온갖 그릇들이 옹기종기 잘 정돈되어 있다. TV에 나오는 집들은 전부 깔끔하게 모든
물건들이 제 자리에 원래 있었던 것처럼 놓여있다.
이렇게
사람이나 조직이나 혼란스러운 상황이나 여건을 싫어한다. 오죽하면 인간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패턴을 찾고 이를 근거로 다시 정리한다. 아무런
혼란도 없고 문제도 없을 때 비로소 안도를 하며 모든 것이 잘 진행되고 있다고 믿는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컨트롤되고
있다고 믿는 순간이 가장 위험하다. 엄청난 혼란이 곧 찾아올 것이라는 징조다. 오히려 사소하지만 자잘한 문제들이 끊임없이 노출될 때가 더
안전하다.
혼란을
좋아하는 조직은 없다. 그 중에서도 군대는 가장 혼란을 싫어하는 조직이다. 규율과 명령체계로 이뤄진 군대는 무엇인가 착착, 척척 떨어지는 모습을
좋아한다. 조금의 혼란도 싫어한다. <최고의 조직은 어떻게 혼란을 기회로 바꿀까>는 군대에서 시작한다. 장군이 저자를 찾아와
훈련용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것을 제안한다. 규율과 명령체계로 이뤄진 군대에 혼란을 심어주는 프로그램을 제안한다. 놀랍게도.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어떻게 군대에 접목할 것인지 시간에 따라 함께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들이 여러 예를 들어가며 군대에 적용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결벽증이나 유독 깔끔한 스타일은 아니지만 내 기준에 따라 정리정돈 되어 있는 상태를 좋아한다. 이런 말을 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정리정돈을 잘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강의를 들을 때도 필기도 하지 않는다. 스케쥴표도 짜지 않고 매년 지급되는 다이어리도 전혀 쓰지 않는다. 플래너따위는 진작에
쳐 박아 놓았다. 내 자신이 그런 스타일이 아니라 아예 포기를 하고 있다. 열심히 활용하고 체계적으로 착착 데이터를 모으는 분들은
존경스럽다.
이를테면
책이 많은 사람은 자신의 서재에 책도 분야별로 잘 구분해 놓아 찾기 쉽게 해 놓는다. 나는 뒤죽박죽 분야에 상관없이 이곳저곳 다 읽고 빈 곳에
놓는다. 책이 놓여 있는 것 자체를 보자면 혼란 그자체다. 장점은 의도하지 않게 다른 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특정 책을 찾다가 관련 분야와
상관없는 책을 발견한다. 아직까지는 기억력이 좋아 책이 어느 곳에 있는지 대략적으로 알고 있어 금방 찾는편이지만 덕분에 찾지 않은 책을 이런
책이 있구나 할 때가 있다. 머리에 새로운 생각이 들어오는 순간이다.
혼란은
결코 저주가 아니다. 패망의 지름길도 아니다. 혼란은 조직과 당신을 더 크게 만들어주는 자양분이다. 흑사병은 유럽인을 몰살했지만 이로 인해
아시아보다 가난한 유럽을 새로운 시대로 이끌었다.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유럽이 끝장났다고 생각한 바로 그 순간부터 말이다. 흑사병은 잠복기를
거쳐 무참하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사망에 이르게 했다. 가난한 자나 부유한 자나 귀족이나 신분도 따지지 않았다.
중세시대에
인문주의를 배척하던 카톨릭은 사제들이 가장 가깝게 환자들 옆에 있던 덕분에(??) 가장 사망을 많이 했다. 사람들은 신에게 선택된 사람들이
사망하는 것을 보고 신에게서 멀어졌다. 카톨릭은 사제들이 급감하자 그 여백을 그때까지 배척하던 인문주의 사상을 갖고 있던 사람들을 대거 사제로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카톨릭은 스스로 르네상스를 촉발했다. 도대체 무엇때문에 카톨릭 사제들이 르네상스시대에 종교적 그림뿐만 아닌 그림도
화가들에게 의뢰를 했는지 이 책을 보고 해소되었다.
그렇게
인문주의 교황도 탄생하고 바티칸 도서관을 설립하여 이 책들이 이탈리아 전역으로 퍼지면서 그전과는 다른 이단아들을 만들었다. 흑사병이라는 우연이
불러온 놀라운 인류역사의 전진이 탄생했다. 세상의 종말이라 여겼던 흑사병은 유럽을 완전히 탈바꿈 시켜버렸다. 사람들의 의식을 변화시키고 자도층의
인물을 탈바꿈시켰고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넌 사건이 되어 버렸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대 혼란이 불러온 인류의 대
도약이었다.
혼란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조직이 경직될수록 사람이 유연하지 못할수록 큰 일이 난다. 평소에 몸이 뻣뻣한 사람이 가장 위험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스트레칭을 통해 몸을 부드럽게 해야한다. 우리 몸은 스트레칭을 싫어한다. 원하지 않는 자극이 우리 몸을 계속 깨운다. 화석만큼 안정되고 편안한
상태가 없을 것이다. 화석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없다. 마찬가지로 조직도 자극을 받아야 하는데 외부로 부터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하는 자극이
아니라 스스로 자극을 만들어야한다.
<최고의
조직은 어떻게 혼란을 기회로 바꿀까>에서는 이를 위해서 여백, 이단아, 계획된 우연으로 설명한다. 죽어라고 일을 열심히 한다고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 쉬는 시간과 노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 능률은 하루종일 앉아 업무를 본다고 생기지 않는다. 대부분 생각지도 못했던 아이디어는
고민하고 집중하던 업무에서 벗어나 전혀 상관도 없는 엉뚱한 일을 하다가 느닷없이 생겨난다. 이를 내가 저술한 <책으로 변한 내
인생>에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전혀 상관없는 책을 읽다가 고민하던 문제를 해결할 아이디어가 갑자기 떠오른다고. 우리에게는 이런
여백이 필요하다. 아인슈타인이 물리학자가 아닌 공무원이었기에 유연한 사고방식으로 상대성이론의 토대를 마련한 것처럼.
한국
사회에서 창의적인 인재가 탄생하지 않는다. 다른 국가 민족보다 똑똑한데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단아들이
살기 힘들다. 이단아들은 우리 사회내에 받아들이고 사회구성원으로 키워야 하는데 배척한다. 대기업 회장이 이야기한 천재가 수많은 사람을
먹여살린다고 했는데 이 천재들이 바로 이단아들이다. 이단아를 보호하지 않으면서 과연 천재가 나올 수 있을까. 절대로 그럴 수
없다.
조직이나
사람이 혼란을 외부의 충격에 의해 받아들일때면 이미 늦었다. 이라크 전쟁은 성공한 전쟁으로 보였지만 실패한 전쟁으로 끝이 났다. 누군가 예측을
했지만 이를 무시했다. 이처럼 스스로 혼란을 예측하고 대비하기 위해서 계획된 우연을 만들어야 한다. 통제할 수 있는 우연을 넘는 우연이 생겼을
때 어떤 사태가 일어나는지 우리는 금융위기로도 알 수 있다. 당시에 골드만삭스는 이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덕분에 금융위기에 무사히
빠져 나와 승자가 되었다.
특이하게도
저자가 아닌 번역가를 믿고 보는 책들이 있다. 이건 역자이다. 경제, 경영서가 많이 번역되지만 번역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번역하다보니 발번역이
될 때가 있다. 그러나, 오랜 시간동안 관련 업계에 종사하여 한국상황에 맞게 번역을 하니 번역서임에도 깔끔하게 읽을 수 있다. 특히, 투자 관련
서적에서는 거의 독보적인 존재다. 덕분에 늘 이건 번역이라고 되어있으면 안심하고 읽을 수 있다. 책의 내용도 아마도 미리 읽어보고 좋으면
번역하는 듯 하다. <최고의 조직은 어떻게 혼란을 기회로 바꿀까>가 그렇다.
얽히고
섥혀 있는 현재의 혼란으로 낙담하고 절망하고 있다면 바로 기회가 눈 앞에 있다고 생각하자. 혼란은 새로운 여백을 선사한 것이고 어쩌면 내가
업계의 이단아로 대성공을 거둘 조짐이다. 그런 우연덕분에 내가 더 커질 수 있던 계기가 되었다고 고백할 수 있게 말이다. 인생이 혼란이 좀
있어야 재미있고 살만하지 않을까. 똑같이 반복되는 인생때문에 다들 지겨워하는거 아닌가. 최고의 조직과 사람은 혼란을 기회로 만든다. 여러 생각을
하며 읽었다. 어떻게 나에게 적용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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