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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의 포도밭 - 읽기


제목에서 느껴지는 위용이 있는 책이다. <텍스트의 포도밭>이라니. 어지간히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감히 논할 수 없는 글이 써져 있을 듯하다. 이런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역시나 읽었더니 저자인 '이반 일리치'가 쓴 글에 허우적거렸다. 더구나 이 책은 12세기 수도사 후고의 <디다스칼리콘>을 해설한 책이다. 또 다시 12세기 라는 표현에 저절로 고개가 숙연해진다. 18~19세기에 쓴 책들도 만만치 않다.

12세기라면 그다지 책이 많지도 않았고 글이 널리 전파되지도 않았던 시대다. 글보다는 여전히 말이 중요한 정보 전달 수단이었다. 글이 존재했지만 사람들은 글을 읽지 못했고 수도사와 같은 사람들이 읽어주는 글을 듣거나 함께 따라 읽었을 뿐이다. 이런 시대에 글과 읽기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니 부담없이 읽기는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다행 중 다행이라면 정말로 신기하게도 이 책은 200페이지다.

책은 300페이지가 넘는데 책 내용은 200페이지고 100페이지 정도가 주석이다. 한글로도 나오고 영어로도 깨알같이 나오는 주석에 놀라울 뿐이다. 겨우 200페이지 되는 내용에 말이다. 인류에게 읽기는 그리 오래된 역사가 아니다. 글은 오래 전부터 존재했고 후대에 전달되었지만 대다수 사람들에게 글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었다. 오랜 시간동안 글은 특정계층에게만 전달되던 비급같았다.

개인이 글을 읽고 해석하고 묵상하는 시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누군가 읽어주고 해석해주면 이를 곧이 곧대로 받아들였다. 자연스럽게 이를 읽어주고 해석하는 사람은 절대권력을 갖게 된다. 이런 괴리감으로 13~14세기에 중죄로 체포된 사람이 몇 가지 단순한 문장을 읽어 해석하거나 쓸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처벌을 피할 수 있었다. 당시 성직자가 이런 면책 특권이 있었는데 똑같이 대접했다.

12세기 후고이후로 글은 일반인에게 내려왔다고 한다. 후고는 학식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읽지 말고 지혜로운  사람 말을 구하고 거울로 얼굴을 보는 것처럼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라고 한다. 읽기는 자신을 위한 것이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닌데 자꾸 그렇게 하려는 사람이 있다. 읽기는 배움의 시작이다. 아무리 읽어도 소용이 없다. 책에서 묵상이라 불리는 생각하는 시간을 갖지 않으면 말이다.
<텍스트의 포도밭>은 읽기가 쉽지 않지만 중간 중간 나오는 문구나 경구가 꽤 의미가 있다. 그 중 이 문구도 참 강렬했다. "알지 못하는 것은 약함에서 나오지만, 앎에 대한 경멸은 사악한 의지에서 나온다." 무엇인가에 대해 약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알지 못하기에 나오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가끔 누군가 자신보다 더 잘 안다는 사실만으로 은근히 조정하며 배척하는 경우가 있는데 사악한 의지를 펼치는 걸로 보인다.

두 경우가 다 한심하고 우리가 제거해야 할 마음가짐이다. "둔하건 총명하건, 능력이 많고 적건, 의지가 강하건 약하건, '모두'가 배움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비난받아 마땅하다."라고 말한다. 그렇다. 자신의 현 능력과 상태와 전혀 상관없다. 배움 자체를 하지 않으면서 이런 상황이라 한탄하는 것이 문제다. 한 마디 더 나아가서 이렇게까지 과감히 이야기한다.

"어떤 사람이 배우지 못하는, 아니 더 솔직히 말해서 쉽게 배우지 못하는 경우와 배울 수는 있지만 배우려 하지 않는 경우는 다르다. 뒷받침할 자원도 없는  상태에서 순수한 노력으로 지혜를 얻는 것이 더 영광스럽듯이, 확실히, 타고난 능력이 있고 재산이 많음에도 게을러서 둔해지는 것은 더 혐오스럽다."

말을 좀 쉽게 풀지 않고 이리저리 휘둘러 표현한 점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참 중요한 내용이다. 배우는 방법은 무척 많지만 그 중에 최고는 누가뭐래도 읽기다. 즉, 독서다. 이보다 더 확실하고 분명한 방법이 없다. 있다면 제발 나에게 알려달라고 말하고 싶다. 이런 읽기에는 가르치는 사람의 읽기, 배우는 사람의 읽기, 혼자 책을 묵상하는 사람의 읽기가 있다. 지금은 마지막 읽기가 대표다. 예전과 달리 글은 말의 기록이 아닌 생각을 거친 주장의 시각적 표현이다.

여기서 읽기와 독서가 있다. 분명히 여전히 독서가 최고의 방법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다만 시대가 변했다. 무조건 독서가 최고의 방법이 아니다. 읽기가 더 중요하다. 이제 온갖 읽기 덕분에 과거에는 쉽게 접근할 수 없었던 수많은 정보를 배우고 깨닫고 알게되었다. 독서는 비록 잘 못할지라도 인터넷에 떠다니는 전부 파악할 수도 없는 글이 우리에게 읽기라는 형태로 다가왔다. 체계적으로 주장하는 책이라는 독서에는 못 미칠지라도 읽기는 갈수록 더욱 중요해진다.

동영상도 분명히 중요하지만 여전히 글로 표현된 읽기는 또 다른 영역이다. 도저히 동영상이 흉내낼 수 없는 분야다. 읽으며 상상하고 시각으로 전달된 글자가 머릿속에서 활성화되는 부분은 아직까지 읽기가 갖는 최대의 장점이자 매력이다. 쓰다보니 내용이 좋다. 책이 좋았던 것인지 내가 좋은 글을 쓴 것인지 여부가 불분명하다. 이런 것 자체가 <텍스트의 포도밭>을 읽은 내가 주장하는 읽기다. 여하튼, 어렵게 표현할 필요없이 읽으면 된다. 더이상 뭐가 중요하리.

까칠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어려운 글로 표현되었다.
친절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읽기는 최고의 배움이다.

함께 읽을 책
http://blog.naver.com/ljb1202/220749674810
나는 왜 책읽기가 힘들까 - 세렌디피티

http://blog.naver.com/ljb1202/220584610341
어떻게 읽을 것인가 - 나처럼

http://blog.naver.com/ljb1202/220233943731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 수단으로서의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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