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난중 일기 - 에세이


처음부터 그런 의도는 전혀 아니었는데 내가 쓰는 글이 전부 좀 딱딱한 내용이다. 원래 일기 쓰는 글로 출발한 글쓰기가 오래도록 유지되었다. 유치한 이야기도 있었고 감정적인 소모도 글로 적었다. 어느 순간부터 쓰는 글의 대다수가 에세이 종류는 없고 정보성이라는 탈을 쓴 글이 되었다. 누군가 나에게 '팬더님은 에세이는 책으로 안 쓰세요?'라는 질문에 손사례를 쳤다. 책이 정보성이 없거나 재미가 없는데 누가 본다 말인가.

한편으로 쓰는 글이 너무 딱딱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과 함께 내 감정이 메마르고 일상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이야기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너무 특정 글만 쓰고 있노라니 조금은 지치고 지겨워지기도 하지만 에세이를 쓰려니 어딘지 낯간지러운 생각도 들었다. 하다보니 운영하는 블로그가 커지다보니 그런 소소한 걸 쓰는 것이 내면의 너무 바닥까지 보여질까봐 두려운 마음도 있다.

그래도 이런 저런 생각은 물론이고 소소한 일상의 편린들을 나만의 관점으로 쓰고 싶다는 욕망도 있다. 지금은 너무 거창한 글만 쓰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마음도 있다. 에세이 쓰는 것이 더 힘들어졌다고 할까. 힘을 빼고 오히려 사소한 것을 주절되면 될텐데 말이다. <엄마 난중 일기> 저자인 김정은을 몇 번 만났다. 나에게 꼬박 꼬박 선생님이라고 불러주지만 내가 선생님이라고 불러야한다.

책을 매개로 만났고 한 겨울에 만나 압구정에서 특이하게도 팥빙수를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담소했다. 그 이후 상수동에서 만나 또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다. 그때마다 말을 조근조근 하셨고 의외로 이야기가 잘 통했다. 나만의 착각인지도 모르지만. 사람을 만나다보면 또 만나고 싶은 사람이나 자주 보고 싶은 사람이 생긴다. 책을 펴낸다는 이야기를 하시면서 아이들과 이야기도 한다며 알려주셔서 그러려니 했다.

시간이 지나 드디어 책이 나왔다. 그것도 따님과 함께. 글을 엄마인 김정은이 쓰고 딸이 그림을 책에 스며들게 했다. 처음 계획과는 달리 아이 교육으로 방향을 잡았다가 그보다는 본인 이야기에 좀 더 집중하고 에세이로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와중에도 이곳 저곳 여행한 이야기도 블로그로 봤고 활동하시는 모습도 봤다. 책이 나왔다고 할 때 에세이 다운 표지와 제목에 더욱 친근감이 들었다.
에세이를 의외로 꽤 읽었다. 워낙 분야를 따지지 않고 읽는 스타일이다. 에세이를 읽다보면 내가 갖고 있는 편견은 에세이는 거대한 담론을 이야기하거나 거창한 사회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부담없이 하는 것이라 본다. 최근 읽은 에세이들은 그런 면에서 좀 아니었다. 무엇인가 가르치려 한다거나 알려주려 한다는 느낌을 갖는 에세이가 많았다. 에세이는 결국 일기가 아닐까.

책으로 펴 낸 에세이는 분명히 일기와 다르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에세이에서 원하는 방향이나 글은 아니었다. <엄마 난중 일기>는 내가 갖고 있는 에세이에 충실했다. 무엇이가 하면 남의 일기를 훔쳐볼 때 느끼는 묘한 시선과 짜릿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저자를 알고 있어 그런 면도 있겠지만 이 책에 나오는 남편과 따님과 아드님도 이 책을 볼텐데 그런면에서 자유롭게 쓴 흔적이 느껴졌다.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게 될턴데 말이다.

에세이에서 무엇인가 거창한 것을 얻고자 하기보다는 읽으면서 공감하고 김정은이라는 사람의 삶과 생각을 훔쳐보고 싶은 감정을 충족시켜준다. 책에서 말많은 것처럼 묘사를 하는데 내가 만났을 때 그런 걸 전혀 느끼지 못했다. 해서 결국에는 내가 말이 더 많았던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엄마로, 아내로, 자녀로, 지인으로, 사회구성원으로 여러 역할에 따른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 읽는 재미도 꽤 있다.

이 책을 어느 날 갑자기 책 한 권쓰겠다고 마음먹고 느닷없이 쓴 책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평소에 글을 써오고 사람들과 함께 글쓰기를 했던 구력이 쌓여 있다. 에세이답게 딱딱하지 않고 말랑 말랑하게 조근조근 글을 풀어낸다. 어쩌면 직접 만나 대화를 하는 것보다 이 책을 읽는 것이 더 재미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면에서 남성보다 여성이 쓴 에세이가 더 재미있다. 남성이 쓴 에세이는 대체로 좀 무겁지만 여성이 쓴 에세이는 올망졸망하며 보조개를 머금은 미소가 보인다.

이 책을 읽으며 단순히 김정은이라는 사람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된 것도 있지만 그림을 딸이 그리며 내용을 읽었을 텐데 어떤 소감이었을까 궁금했다.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그림을 그렸을텐데 말이다. <엄마 난중 일기>를 읽다보니 나도 에세이를 쓰고 싶다는 욕망도 들었다. 너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소소한 감정을 무시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싶었다. 글쓰기가 제일 좋은 점은 이렇게 누구를 찾아가지 않아도 스스로 자기치유하는 능력이 있는데 말이다.

어느 부분인지 몰라도 읽으면서 잠깐 희미한 미소를 넘어 '풋'하고 웃는 장면도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그런 순간은 의외로 많지 않다. 에세이를 읽는 재미는 이런 순간에 있는 것이 아닐까한다.

까칠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늦게 보내 주셔서 읽었다.
친절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에세이 쓰고 싶은 감정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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