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16의 게시물 표시

미술관 옆 MBA - 미술관 배경지식

이미지
인문학이 유행을 하며 사회 곳곳에 배우기 위한 바람이 불었다. 이런 현상은 국내 MBA에도 도입되었다. 정확하게 보자면 최고경영자과정이라 불리는 시스템에서 미술이나 고전 책으로 배우는 경영같은 학과가 개설되었다. 미술같은 경우에 미술작품을 보여주며 그 의미를 알려주고 직접 미술작품을 관람하러 현장으로 비행기 타고 간다. 이런 교육으로 경영에 접목하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 인맥이 주목적인 것으로 알고 있다. <미술관 옆 MBA>는 내가 착각한 점이 미술이라고 봤다. 미술작품을 소개하며 그에 따라 경영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알았다. 미술작품이 책에 언급되며 소개하는 것은 맞았는데 그보다는 미술관에 좀 더 포커스를 맞춘 책이다. 여러 지역의 미술관을 소개하며 그 안에 있는 미술작품도 소개한다. 그러면서 미술관에 관련된 인물을 알려준다. 미술작품일수도 있고 미술관을 만든 사람일수도 있다. 그런 후에 소개한 인물에 따라 경영과 접목한다. 어지간히 유명한 미술관은 전부 소개된다. 사실 우리는 미술관에 관심있는 것이 아니라 미술관 내부에 있는 미술작품에 관심있다. 대부분 어느 미술관을 간다고 할 때 미술관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미술작품때문에 간다. 보고 싶은 작품이 그 미술관에서만 볼 수 있어 간다. 하지만 그 미술관이 어떻게 그 미술작품을 갖게 되었는도 생각해보면 궁금하다. 특정 작가의 미술관이면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주변에 미술관이 많지만 그 중에 사람들이 몰리는 미술관이 있고 한산한 미술관이 있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미술작품이다. 결국에는 콘텐츠가 핵심이다. 아무리 미술관이 화려하고 웅장하며 관객 편의로 시설을 만들고 구성하고 배치해도 미술작품때문에 사람들은 그 장소를 관람하러 간다. 그렇다고 미술관의 존재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 그것은 바로 관람료와도 연결된다. 아무리 훌륭한 미술작품이 있어도 관람료가 터무니없이 비싸면 망설

무엇이 이 나라 학생들을 똑똑하게 만드는가 - 교육

이미지
한국의 교육열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우죽하면 오바마 대통령은 몇 번이나 한국을 언급하며 한국을 따라해야 한다고 할 정도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오바마 대통령이 제대로 된 현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하는 이야기라고 한다. 한국에서 교육은 모든 사람에게 관심사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중고등학의 교육이다. 아주 조금 더 확장하면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다. 재미있는 점은 이 시기만 지나면 다들 관심 갖지 않는다. 특정 시기에만 관심을 갖고 들여다본다. 자녀가 해당 나이가 되었을 때 관심은 폭발하고 지나면 전혀 관심 두지 않는다. 누구나 해당 나이대 자녀를 인생에 있어 경험한다. 이러다보니 누구나 교육 전문가다. 한국 부모들은 자녀 이상으로 교육에 대해 많은 부분을 알고 있고 경험했고 지도한다. 아이들의 부모가 아닌 코칭역할을 한다. 엄격하게 당근과 채찍을 휘두르며 아이들 교육에 참여하며 성장시킨다. 한국만 유독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 것인지, 전 세계적인 현상인지 여부는 <무엇이 이 나라 학생들을 똑똑하게 만드는가>를 읽으면 힌트가 나온다. 세계 최고 국가인 - 사람마다 다르게 규정할 수 있지만 - 미국에서 커다란 질문을 던진다. 가장 살기 좋은 국가이자 풍족한 미국 학생들의 교육 수준이 상위권에  속하지 못하고 중위권에 속하느냐에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탐구하는 책이다. 전 세계 학생들을 교육 수준을 평가하는 피사 시험이 있다. 이 시험에서 상위권에 속하거나 두드러진 특징이 있는 국가들은 교육에서 어떤 특징이 있으며 그들이 미국과는 무엇이 다르기에 좋은 성적을 유지하는가를 통계나 글로만 접하지 않고 직접 학생들이 해당 국가에 가서 직접 체험한다. 그 나라들은 한국, 핀란드, 폴란드다. 핀란드는 오래도록 교육 성적이 좋았다. 한국은 늘 성적이 상위권이며 교육에 대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폴란드는 하위권에 있던 국가에서 상위권으로 진입했다. 이들 국가에서는 교육과 관련하여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살펴본다. 해당 국가의 교육을 직접

빅 퀘스천 - 가족사

이미지
더글라스 케네디 작품을 거의 읽었기에 <빅 퀘스천>이 나왔을 때 깜짝 놀랐다. 분명히 새 작품이 나왔는데 얼마 되지 않아 또 나와서. 알고 봤더니 이번 에세이였다. 그러다보니 관심이 덜 했다. 그래도 더글라스 케네디의 작품을 거의 다 봤고 에세이에서는 무엇이라 이야기하는 지 괜히 궁금하기도 하고 금방 읽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판단도 들어 읽게 되었다. 읽기 전에 착각 한 것이 더글라스 케네디가 여행작가로도 활동한 걸 알고 있어 여행이야기라 오판했다. 정작 책을 읽으니 여행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큰 줄기를 보면 자신의 가족이야기였다. 총 7가지 질문에 답을 하는 형식이다. 그 질문에 자신이 경험했던 것과 알고 있는 지식을 기반해서 알려준다. 소설가답게 질문을 풀어낸다. 대부분 이런 형식으로 질문하면 조금 거창한 철학적인 접근을 하거나 학문적으로 풀어낸다. 최근에는 이를 실험과 조사를 곁들이며 알려준다. 소설가라 그렇게 하기보다는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과 자신의 상황으로 설명한다.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 우리는 몇 줄로 끝을 맺지만 아주 디테일하게 설명한다. 자세한 세부묘사는 물론이고 만났던 사람과 나눴던 대화까지. 설마하니 몇 년 전이나 몇 십년 전 대화까지 자세히 기억하고 있지는 않을테고 살을 상당히 많이 붙였을 것이다. 그 덕분에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보다 편하게 읽을 수 있다. 각 목차에 따른 제목은 다소 거창할 수 있지만 책에 나오는 내용은 크게 딱 두가지라고 보면 된다. 하나는 이혼을 한 전처이야기, 또 하나는 부모님 이야기다. 지금까지 나온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이 이해가는 책이기도 하다. 이혼이 작가의 삶에 얼마나 큰 상실감과 영향을 미쳤는지 두고두고 반복해서 나온다. 그렇다고 후회하지는 않는다. 워낙 다양한 국가에서 살아온 이력을 지닌 사람답게 보다 오픈되어 있기도 하다. 책을 읽어보면 프랑스에서는 결혼을 해도 다른 이성과 만남을 크게 문제삼지 않는 걸로 보인다. 실제로 프랑스 대통령 사례를 보더라도

만화 토지 제2부 - 9

이미지
본격적으로 후대가 무대 전면에 등장한다. 여전히 어머니세대는 있지만 <토지>에 나오는 그들은 아무런 힘이 없다. 현실에 체념한 상태로 살아간다. 오히려 자신이 현재 이렇게 된 것이 몇몇 문제때문이라며 기회만 있으면 못잡아 먹어 안달일 정도다. 차라리 악한 일을 저지르기는 해도 후대는 무엇인가 하려고 계속 노력한다. 그 노력이 오로지 자신만 잘 먹고 잘 살기 위한다는 점에서 아쉽지만. 그들의 노력이 한국 사회를 계속 발전시킨 원동력이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서희와 길상은 끝내 결혼한다. 꽤 중요한 장면일 듯 한데 너무나 허무하게 둘은 결혼한다. 길상이 떠나려하지만 서희는 그를 잡으려 노력하기보다 화를 낸다. 교통사고로 서희가 다친후에 길상은 도망가지 않고 서희와 결혼하게 된다. 그 후에 아무런 꾸밈없이 - 책에서는 묘사나 설명이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 곧장 이미 결혼한 것으로 처리된다. 서희와 길상의 인연과 사랑은 책에서 계속 나오던 소재였는데 좀 그랬다. 이번 편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김거북이라고 하는 김두수다. 그 아버지때부터 원래 평판이 좋지 못해 죽음을 당했고 김두수는 마을에서 쫓겨났는데 인연이라고 다시 만나게 된다. 그는 살기 위해서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스타일이다. 여자를 겁탈하는 것은 너무 쉬운 것이고 배신이나 등쳐먹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게 그는 그 시대에 가장 최적화된 인물로 표현된다. 어느 누구도 미래를 알 수 없다. 그러다보니 자신이 할 수 있는 지금에 최선을 다한다. 이럴 때 문제는 미래를 예측하지 않으니 잘못된 판단으로 결국에는 끝이 안 좋다. 그나마 지금은 살만한 시대다. <토지>가 나온 시대만 해도  지금보다 훨씬 약육강식이 심한 시대였다. 더구나 당해도 하소연 할 때도 없고 그저 속으로 삭혀야 하던 시대다. 지금은 최소한 외치기라도 한다. 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당시에는 사람이 제대로 사람 취급받지 못하던 시절이다. 지금 이 시대에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하다. 나처럼 무지랭이가 저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 - 그게 좋은 건 아니다

이미지
제목만 보면 그다지 관심이 가는 책은 아니다. 서울대나 하버드와 같은 단어가 들어간 책을 읽어보면 대체적으로 독자들은 좋아할지 몰라도 내용이 별로인 경우가 많았다. 결국에는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며 공부를 하니 너희들도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실제로 책에 나온 내용과 다른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하버드 대학을 예로 들며 어쩌구 저쩌구 하는데 정작 하버드대학을 다녔던 졸업생 이야기를 들으면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이처럼 이 책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도 제목을 볼 때면 한국사회의 성적 지상주의를 이야기하는 책으로 읽혔다. 서울대 아이들은 어떤 식으로 요점정리를 하고 시험이 다가올때면 어떻게 체계적으로 공부해서 특출난 사람이 되고 높은 학점을 받는지를 알려주는 책으로 읽혔다. 하지만 그런 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구나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핵심은 서울대에서 고학점을 받는 친구들이 우수하다고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었다. 우리는 어느 학교에서나 고학점을 받는 학생은 무조건 우수하며 최고의 실력을 갖고 있다고 본다. 고학점을 받는 학생은 교수의 수업을 열심히 듣고 교수가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캐치해서 과제를 제출하고 시험을 치는 것은 맞다. 교수가 원하는 결과물을 제출하니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는 것도 맞다. 문제는 이런 학생들이 과연 사회에서 원하는 인재인가라는 부분에 있어 의문을 표시하는 책이다. 수용적으로 지식을 흡수하는 학생이 올바른 학생인가 여부는 다른 영역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고학점을 받는 학생일수록 수동적으로 주는 것만 받아들이는 스타일이다. 이것이 나쁜 것인가, 좋은 것인가는 분명히 토론과 논쟁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사회는 쫓아가는 전략으로 선진국까지 왔다. 아무것도 없던 시대에는 무조건 만들었고 다음으로는 무조건 흉내내서 품질을 높혔다. 이제 더이상 팔로우하는 자세가 아닌 선도하는 전략으로 해야 한다고 볼 때 한국 사회 교육구조에서는 힘들다. 그 이유

편안함의 배신 - 생존본능

이미지
현대인은 그 어느때보다 훨씬 더 살기 좋은 세상을 살고 있다. 실질적으로 생존을 위한 노력을 과거보다 덜 해도 된다. 과거에는 생존을 위한 노력을 많이 해야 했지만 지금은 상당히 많은 부분에 있어 생존이 가능하다. 과거보다 덜 노력해도 되지만 인간은 과거에는 없던 다양한 문제들이 생겼다. 현대인에게 모든 질병의 근원이라고 하는 비만을 보더라도 현대에 들어와 생겼다. 스트레스로 인한 심적고통을 겪는 사람도 많아졌다. 과거와 달리 현대인은 너무 편안 삶을 산다. 하루종일 집에 머물러 있어도 지루할 틈이 없을 정도로 온갖 볼거리가 가득 넘친다. 하고 싶은 것도 얼마든지 하고자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 과거 사람들은 집에서 소일거리 없이 정말 시간을 때운다고 볼 수 있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런데도 현대인이 오히려 더욱 지루해하고 심심해한다. 잠시도 무엇을 하지 않으면 무엇인가 불편하다고 느낀다. 멍하니 있는 것 자체도 못견뎌 할 정도로. 이처럼 우리 생활은 과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편안해지고 있는데 우리는 점점 더 편안하지 않다고 여긴다. 공항장애와 같이 과거에는 다소 신경쓰지도 않았던 정신적인 질병이 현대인을 괴룁힌다. 이런 이유가 무엇인지 <편안함의 배신>을 알려준다. 더욱 편안해지고 편리해진 세상을 살고 있는 현대인은 왜 이토록 힘들게 되었을까. 너무 잘 먹어 비만이 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못해 정신병에 걸린다. 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질병은 어디서 온 것일까. 인간은 진화관점에서 인간은 생존과 종족번식이라는 두 관점에서 볼 수 있다. 그 중에서 이 책은 생존번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전부 인간의 생존번식때문이라고 말한다. 비만 이되는 사람은 바로 생존본능이다. 이미 이 내용은 진화관점에서 익히 알려진 내용이다. 인간은 원래 먹고 싶은대로 먹을 수 있지 않았다. 먹을 것이 부족했다. 지금처럼 먹고 싶을 때 먹고 배고프지 않아도 먹을 수 있었던 시절은 얼마 되지 않는다.

맬서스, 산업혁명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신세계 - 맬서스 트랩

이미지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며 멸망할 것이라 예측했던 맬서스 예측처럼 인구는 비교도 되지 않게 늘어났다. 하지만 인류는 살아남았다. 이제 과다한 인구 숫자로 지구의 종말을 예측한 것과 달리 인구가 즐어들며 멸망을 예측하고 있다. 수 백년 동안 인류는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지구의 미래는 우울하다. 과거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그렇다. 미래를 그린 영화는 어김없이 전부 유토피아가 아닌 디스토피아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사실 불행하지는 않다. 불행하다고 느낄진 몰라도. 이 책은 내 필터링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던 책이다. 책 추천에 관해서는 믿을 수 있는 홍춘욱씨 - 물론 추천한 모든 책을 읽지는 못한다. 어려운 것도, 취향에 맞지 않는 것도 있으니 - 가 올린 리뷰와 관련 글을 읽고 계속 노렸는데 절판이다. 우연히 도서관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럴 때 참 거짓말 살짝 보태 닭살이 돋는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읽고 싶은 책을 발견한 기쁨이라니. 그렇게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마침 쌓아놓은 책 목록도 정리가 되었고. 생각보다 읽기 쉬웠고 흥미롭고 지루하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의외로 이런 책이 재미있다. 재미없고 딱딱하고 따분할 것 같지만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의 한계를 넓혀주고 이해하지 못한 세계를 보여준다. 매일 역사에서 배우라고 하지만 역사책을 읽는 것보다 이런 책을 읽는 것이 훨씬 더 도움이 되고 지금을 알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인간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반복된다는 것을 깨달을뿐이다. 우리는 지금 똑똑하다고 믿을지 몰라도 예전이나 지금이나 살아가는 것은 다 똑같다. 총 3파트로 나눠 올릴 예정인데 그 중에 첫번째 파트를 써 본다. 인류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이나 발견과 사조와 흐름이 많은데 그 중에서 산업혁명은 인류 역사에 있어 완전히 다른 세계를 출발시켰다. 한국 현대사에서 IMF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는 것처럼 인류역사는 산업혁명 전과 그 후로 나눌 수 있다. 산업혁명을 통해 인류는 소득 불평등은 감소시켰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