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나라의 조건 - 얀테의 법칙
행복에 대해 최근 연구가 활발하다. 예전에도 행복에 대해 이렇게 집착했을까. 행복하다는 표현 자체가 과거부터 있었을까. 복이라는 단어가 한자인걸 보면 과거부터 복이라는 단어와 함께 내려온 건 같은데 행복이 그렇게 중요한 개념이었나라는 생각을 한다. '행복해 죽겠다.'는 표현도 과가에 있었을까. 행복이란 단어를 입 밖으로 내는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닐까싶다. 언제부터 이렇게 의식하지 않고 행복이란 단어를 입밖으로 꺼냈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각 국가의 행복지수까지 매기고 있다. 이럴 때마다 늘 사람들은 놀라워한다. 예상하지 못한 국가에서 행복지수가 높다. 아무리 봐도 우리가 더 잘사는 것 같은데 그들이 우리보다 행복지수가 엄청나게 높다. 우리보다 잘 사는 선진국이 그런 것은 쉽게 용납하고 인정하지만 그렇지못한 국가라 판단되는 나라가 그러면 고개를 갸웃둥한다. 그러면서 다들 합리화를 한다. 경제력과 행복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잘 산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못 사는 나라는 차라리 빈부격차가 심하지 않아 비교할 것이 없으니 다들 행복한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한다. 반드시 꼭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한국도 과거에 누가 누구를 비교하며 행복한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은 걸로 안다. 다들 먹고 살기도 힘들었다. 빈부격차도 심하지 않아 잘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생활수준 등의 차이가 심하지 않았다. 이것도 생각해 볼 것은 예전에는 수준 차이가 덜한 것이 아니라 잘 몰랐던 것이 아닐까. 매스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았고 지금처럼 SNS를 통해 내가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의 일상과 소비를 간접적으로 알지 못했다. 이러니 굳이 비교할 필요가 없으니 그러려니 하고 살지 않았을까. 지금은 워낙 너무나 많은 것들이 오픈되며 저절로 알게 된다. 나도 모르게 내 상황과 비교하며 자꾸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든다. 흙수저, 금수저라는 단어 자체도 그런 측면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차라리 몰랐으면. 이게 알고 모르고의 문제가 아닌 공정한 룰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