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017의 게시물 표시

행복한 나라의 조건 - 얀테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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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대해 최근 연구가 활발하다. 예전에도 행복에 대해 이렇게 집착했을까. 행복하다는 표현 자체가 과거부터 있었을까. 복이라는 단어가 한자인걸 보면 과거부터 복이라는 단어와 함께 내려온 건 같은데 행복이 그렇게 중요한 개념이었나라는 생각을 한다. '행복해 죽겠다.'는 표현도 과가에 있었을까. 행복이란 단어를 입 밖으로 내는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닐까싶다. 언제부터 이렇게 의식하지 않고 행복이란 단어를 입밖으로 꺼냈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각 국가의 행복지수까지 매기고 있다. 이럴 때마다 늘 사람들은 놀라워한다. 예상하지 못한 국가에서 행복지수가 높다. 아무리 봐도 우리가 더 잘사는 것 같은데 그들이 우리보다 행복지수가 엄청나게 높다. 우리보다 잘 사는 선진국이 그런 것은 쉽게 용납하고 인정하지만 그렇지못한 국가라 판단되는 나라가 그러면 고개를 갸웃둥한다. 그러면서 다들 합리화를 한다. 경제력과 행복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잘 산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못 사는 나라는 차라리 빈부격차가 심하지 않아 비교할 것이 없으니 다들 행복한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한다. 반드시 꼭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한국도 과거에 누가 누구를 비교하며 행복한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은 걸로 안다. 다들 먹고 살기도 힘들었다. 빈부격차도 심하지 않아 잘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생활수준 등의 차이가 심하지 않았다. 이것도 생각해 볼 것은 예전에는 수준 차이가 덜한 것이 아니라 잘 몰랐던 것이 아닐까.  매스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았고 지금처럼 SNS를 통해 내가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의 일상과 소비를 간접적으로 알지 못했다. 이러니 굳이 비교할 필요가 없으니 그러려니 하고 살지 않았을까. 지금은 워낙 너무나 많은 것들이 오픈되며 저절로 알게 된다. 나도 모르게 내 상황과 비교하며 자꾸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든다. 흙수저, 금수저라는 단어 자체도 그런 측면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차라리 몰랐으면. 이게 알고 모르고의 문제가 아닌 공정한 룰에 대한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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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 저자를 좋아한다. 흔히 말하는 젠체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식인이나 문학인을 직접 만나 이야기 해 본적은 없지만 내 편견인지 몰라도 젠체하는 경우가 많다. 그닥 대단할 것도 없는데 남들보다 좀 더 지식이 있다는 이유와 글을 써서 사람들의 감탄을 받았다는 점 때문에 그런 대접을 받으며 자기도 모르게 구름에 떠 있다보니 생긴 현상 아닐까. 각자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이 다르다. 우리는 왜 기술을 갖고 있으면 존경하지 않나. 용접은 아무나 할 수 없다. 똑같이 존경해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유독 한국은 과거부터 내려오던 정서때문인지 사농공상에 의해 좀 더 그쪽을 대접하는 흐름은 있다. 이런 경우는 투자 쪽도 많다. 그저 투자를 했을 뿐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자산을 모았다. 대단한 것은 맞지만 이게 누군가에게 잘난체 해야 할 이유는 아니다. 나는 안 했고 (또는 못했고) 그 사람은 했다. 아니면 나는 중간에 포기했고 그는 끝까지 했다. 대단하다고 여기는 것은 맞지만 이걸 갖고 영웅대접할 필요는 없다. 각자 자신이 처한 환경과 상황에 따라 했고 안 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자꾸 구름 위에 있어 봤자 해당 분야에서나 사람들이 알아봐주고 인정을 받는 것이지 동네만 벗어나면 누구도 모른다. 내 경우도 그래도 좀 알아주는 사람이 있지만 몇 명 되지도 않는다. 거리에 걸으면 그저 동네 아저씨가 다닐 뿐이다. 그런 면에서 김정운은 거창하지 않다. 솔직하고 질투하고 감정에 충실하다. 심리학자와 철학자 경우에 유독 나는 좀 다르다는 정서로 우리가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김정운은 자신이 스스로 알아서 모든 걸 내려놓고 정말로 동네아저씨가 농담따먹기 하는 것처럼 이야기해준다. 편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우리는 잘 난 인간이 잘 난 행동을 하면 재수없어 한다. 그렇지 못한 인간이 그런 행동을 하면 재미있어 한다. 누가 봐도 - 본인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 키도 작고 배도 나오고 얼굴도 잘 생기지 못한 사람이 난 그런 사람이라 주장하며 썰을 푼다

카르마 경영 - 마음 먹은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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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모리 가즈오는 일본에서 아주 유명한 기업가다. 단순히 경영을 잘해서만은 아니다. 자신이 운영한 기업뿐만 아니라 위기에 빠진 기업을 국가의 요청을 받고 회생시킨 적도 있다. 단순히 경영을 잘한다는 것이 아닌 인생관과 철학까지 많은 사람에게 본이 되고 있다. 한국에도 꽤 많은 책이 번역되었다. 몇 권의 책을 읽었는데 가장 유명한 책은 <카르마경영>이다. 이 책이 실질적으로 이나모리 가즈오의 모든 핵심이 담긴 내용이다. 이제서야 핵심이 담긴 책을 읽게 되었다. 책에 나온 카르마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불교에는 "사념이 업을 만든다."라는 가르침이 있다. 업이란 카르마(karma)라고도 하며 현상을 만들어 내는 원동력이다. 즉 생각한 것이 원인이 되며, 그 결과가 현실이 되어 나타난다. 그러므로 어떤 생각을 하는가가 중요하며, 그  생각에 나쁜 것이 섞여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이 내용이 이 책인 <카르마 경영>에서 주구장창 이야기하는 핵심이다. 책 뿐만 아니라 이나모리 가즈오가 전달하는 핵심 메시지다. 마음먹은대로 이뤄진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상당히 비과학적이고 성공한 사람의 전형적인 레파토리다. 자신이 생각했고 그게 실천되었다고 말한다. 그 외에도 이런 고백을 하는 사람이 참 많다. 문제는 이게 애매하다는 점이다. 생각한대로 되지 않는 것이 솔직히 더 많다. 생각한대로 된다면 누구나 이미 엄청난 사람이 되었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면 실천하지 않았다는 공격을 당한다. 이런 주장은 동기부여책에 수없이 반복되어 나오는 내용이다. 이 책에서 참 중요한 내용은 '인생은 마음에 그린 대로 이루어진다.'가 아니다. 내가 볼 때 그 보다는 생각한다는 점이다. 당연히 모든 것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몇몇 것은 생각대로 되기도 한다. 최소한 생각하지도 않으면 아무 것도 이뤄지지 않는다. 생각이라도 해야 무엇인가 실천하게 된다. 생각하지 않는데 실천하는 사람은 없다. 생각

주식시장의 마법사들 - 트레이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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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시장의 마법사들>은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미국에서 트레이딩을 하는 전문가들과 인터뷰 후 이를 책으로 펴 냈는데 상당히 큰 반향을 이끌어냈다. 무엇보다 현직에서 트레이딩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누구나 궁금하다. 그렇다고 아무나 그들과 인터뷰를 할 수는 없다. 이건 기자들도 힘들다. 책 저자인 잭 슈웨거는 현직에서 트레이딩을 하고 있어 질문하고 대답듣고 추가 질문이 가능했다. 이러니 책은 더욱 인기를 끌게 되었다. 어떤 식으로 트레이딩을 하는지 여러 상황마다 어떻게 대처하는지 무척 궁금한 걸 묻는다. 상대방이 어떤 이야기를 하면 그에 가장 맞는 적절한 질문을 추가로 하며 대답을 이끌어낸다. 이런 내용으로 구성된 책이다. 아무나 할 수 없기에 더 좋다. 특히나 책에 소개된 모든 투자자들은 전부 자신의 수익률이 공개되어있다. 그들은 진짜다. 현실에서 매수와 매도를 하며 수익과 손실을 보고 있는 투자자라 더욱 흥미로운 책이다. 이 책의 시리즈가 워낙 유명하고 오래되어 책에 소개된 어떤 투자자는 자신의 목표 중 하나가 이 책 시리즈에 선정되어 인터뷰를 하는 것이라는 고백도 한다. 게다가 어떤 투자자는 자신이 트레이딩 세계에 온 것은 <주식시장의 마법사들> 시리즈를 읽고 나서였다는 말도 한다. 그만큼 책은 실제 투자하는 사람의 자세하고도 내밀한 투자 방법이 소개되고 있다. 책으로 풀어내는 것이 아닌 인터뷰라 한계는 존재하지만 짧고 굵게 투자 방법을 섭취할 수 있다. 소개된 투자자들이 사실 내가 하는 방법과는 다소 다른 경우가 많다. 트레이딩이라는 표현처럼 자주 매수와 매도를 하는 투자자들이다. 그들 중 자주 사고 팔지 않고 큰 그림을 그린 후 사고 파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자주 사고 판다. 개별 종목으로 볼 때는 그때마다 다른 상황이 나타난다. 거시 경제로 볼 때는 비슷하게 주가는 흘러갈 수 있어도 개별 기업으로 볼 때는 각자 상황에 따라 주가가 상승하기도, 하락하기도 한다. 이를 눈치 채는 것이 트레이딩이라고 할

나의 형, 체 게바라 -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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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는 안다. 솔직히 자세히 모른다. 그럼에도 체 게바라를 안다. 굳이 이야기하면 저항의 정신. 최근 젊은 세대는 몰라도 어느 정도 나이가 있으면 체 게바라는 이름은 안다. 안다는 표현이 애매한 것이 그에 대해 거의 모른다. 알고 있는 것은 사실 이미지다. 젊음과 저항은 맞닿아 있다. 청춘에게 저항은 불가분의 관계처럼 느껴진다. 이러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체 게바라는 저항의 상징이 되었고 이미지로 소비되었다. 체 게바라가 저항의 상징이라는 것만 안다. 그 이상은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저항이라고 하면 어딘지 멋있게 보이니 체 게바라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몸에 문신을 새긴다. 정작 체 게바라에 대해 제대로 공부를 하거나 일대기에 관련된 책을 읽어 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마다 극히 드물지 않을까. 현대는 이미지의 시대다. 실제로 그가 어떤 인간인가는 전혀 문제 없다. 어떻게 사람들에게 보여주느냐가 핵심이다. 일단 이미지가 생성되어 고착되면 그 다음부터는 어찌할 바를 모를 정도로 손 쓸 수 없다. 그렇게 체 게바라는 이미지가 되었다. 이마저도 이제는 기억 속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다. 10년 전만해도 체 게바라에 대한 여전히 티셔츠 등에 프린트 된 옷을 입고 다녔다. 시간이 지나며 잊혀지기 마련이다. 체 게바라가 더욱 유명해진 이유는 이마저도 또한 이미지기도 하다. 그는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쿠바에서 활동했다. 이후 볼리비아에서도 활동을 했지만. 그가 유명해진 계기는 어디까지나 미국 덕분이 아니었을까. 미국에 저항하는 사나이. 별 것도 없고 군대도 없고 혈혈단신과 마찬가지였지만 그는 쿠바에서 미국에 맞서 싸워 승리(?)를 쟁취한다. 이런 이미지 덕분에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그가 만약 아프리카에서 어느 정부군의 반군으로 활동했다면 이렇게까지 유명해질 수 있었을까. 아마도 아닐 듯싶다. 사실 체 게바라가 선택한 것은 아니다. 그가 유명인물이 된 것은. 이런 내 생각도 사실 정확하지 않다. 난 체 게바라에 대한 일대기를 읽은

탁월한 사유의 시선 - 내가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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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어렵다. 이런 이미지가 있다. 철학이 쉽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먹고 사는 것도 다 철학이라는 말을 하는 걸 보면 어려운 것이 맞다. 먹고 사는 것이 쉬운 사람은 없다. 이건 어디까지나 돈을 많이 번다는 것과도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철학은 한국에서 철학관이 떠오르기도 한다. 내 미래가 무엇이냐, 내가 어떻게 될 것이냐. 이런 질문도 참 좋다. 나쁠 것은 없는데 중요한 것은 질문 자체는 너무 좋은데 질문에 대한 답을 자신이 찾는 것이 아닌 타인에게 의지한다. 이런 별 것 아닌 개념이 한국에서 철학이 제대로 체계를 잡지 못한 이유다. 철학 부재가 비극이기도 하지 않을까. 철학은 철저히 자신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바탕이 되어야 하는데 타인에게 의지한다. 자꾸 남 탓을 하게 된다. 무엇을 하는데 자신이 내린 판단이 아닌 알수 없는 미지의 것을 의지하는 것이다. 이런 표현은 좀 과하다 할 수 있지만 한국인의 중심에 흐르는 정서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철학이란 무엇인가 딱딱하고 어렵고 고리타분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플라톤, 소크라테스, 공자, 장자 등. 이런 위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책을 읽는다. 그런 후에 그들이 한 이야기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그런 후에 자세한 내용을 하나씩 풀어내며 그 뜻을 안다. 그리고선 깨닫는다. 세상을 다르게 본다. 아마도 철학을 배우는 이유는 그런 것이 아닐까. 자꾸 철학이 어려운 이유가 과거에 했던 걸 읽으려 하니 그렇다. 현대와 다른 용어라 더욱 힘들다. 이렇게 과거의 글을 읽고 이해하려하니 고리타분하고 힘들다. 정작 철학은 플라톤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해보면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읽을 수 없다. 최대한 노력해도 완벽하게 파악하기 힘들다. 대체적으로 그럴 것이라 판단하고 유추하는데 그친다.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맹자에 대해 완벽하게 알았다는 뜻이 아니다. 맹자에 대해 아무 것도 몰라도 된다. 그보다는 위인이 했던 단 한마디

학군지도 - 심정섭의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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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되어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것이 아이의 공부다. 통칭 학군이라 표현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닥달하여 좋은 대학을 보내든지, 자유롭게 키우든지, 어떤 선택을  하든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걸 꼭 유독 한국만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전 세계적인 공통현상이다. 부모의 지극하 자연스런 반응이자 마음이다. 이왕이면 공부를 잘 하면 좋다. 어느 부모가 싫어하겠는가. 이왕이면 자녀에게 해 줄 수 있는 걸 해주지도 않고 포기하기는 어딘지 이상하다. 이런 현상은 특히 중산층 가정이 제일 심하다. 해 주고 싶은 마음만 있는 부모와 해 주지만 싹이 보이지 않으면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있는 부모. 이런 부모를 제외하면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다른 아이처럼 하는 것도 하지 않는 것도 전부 신경 쓰인다. 이런 현상이 중산층에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학군이라는 특수한 단어가 생겼다. 학군이 예전에는 서울대를 비롯한 명문 대학에 얼마나 보내느냐에 달려있었다. 이제 특수목적고가 생기며 그런 현상은 사라졌지만 아쉽게도 중학생으로 내려갔다. 과거에는 고등학교를 간 후에 본격적인 레이스가 시작되었다면 이제는 중학생부터 출발한다. 특수목적고를 가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로 나눠진다. 특수목적고는 분명히 취지가 있을텐데 그것과 전혀 상관없이 현재 운영된다. 그럼에도 당국은 나 몰라라한다. 대학을 가기위한 목적보다는 순수한 그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면 좋겠다. 그렇게 중학생으로 내려온 학군이 학교만 의미하는 것이 아닌 학원가까지 결합되었다. 학군이 좋다는 것은 단순히 고등학교가 아닌 학원가를 포함한다. 여기에 엄마들이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에 '초품아'가 인기다. 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로 자녀들이 마음놓고 통학을 할 수 있는 학교다. 이런 아파트를 부모들이 선호한다. 이에 못지 않게 좋은 고등학교를 가는 중학교 학군을 선호한다. 어느 지역에 거주하느냐에 따라 들어가는 중학교가 달라진다. 단지 이런 이유때문에 주변시세보다 아파트 가격이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