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015의 게시물 표시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 - 애덤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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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책을 읽어봐도 공통적으로 자본주의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이론적인 토대가 출발했다고 알려준다. 특히 이기적인 마음에서 출발해서 모든 사람들이 잘 살게 된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알려준다. 정작 그 개념은 <국부론>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다. 딱 한 대목에서 빵집이야기가 나온다. 나도 <국부론>을 읽지 않았지만 - 나처럼 원전을 읽지 않는 사람이 대다수 - <국부론>이 어떤 내용인지 알지도 못한다. 딱 하나의 개념인 이기적인 마음만 안다. 실제로 당시에 지금처럼 자본주의라는 개념이 있던 것이 아니고 철학개념이었다. 대부분 철학에서 출발한다. 수학도 과학도 그렇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처럼 기술이 발달한 시대가 아니라 생각만으로 떠들었다. 직접 실험하거나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자본주의도 시간이 지나 개념이 체계화되고 사람들이 인지하고 인식하게 된 것이다. 애덤 스미스도 분명히 철학적인 이야기를 했을 뿐인데 그 안에 향후 인류가 나아갈 길이 포함되어 자본주의 이야기에 반드시 포함되었다. 애덤스미스는 정작 <국부론>보다는 <도덕감정론>을 더욱 공들였다. 몇 번에 걸쳐 고쳐 썼다. <국부론>보다 먼저 나왔고 마지막까지 고쳐 다시 출판하것도 <도덕감정론>이었다. 애덤스미스는 관세업무도 보고 귀족 자제의 과외도 하면서 책을 집필했다. 결혼도 하지 않았다고 하니 금욕적인 삶도 살았다. 이 책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의 저자인 러셀 로버츠는 우리로 치면 팟캐스트를 운영하다 우연히 <도덕감정론>을 방송에서 하기로 했다. 구입만 하고 볼 생각도 없던 책을 읽게 되었다. 처음에는 다소 힘들었다. 이런 종류의 책들이 그렇듯이. 시간이 지날수록 책 내용에 빠지며 이토록 좋은 책이 제목만 알고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이 안타까워 직접 쉽게 푼 내용으로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직접 읽어본 적이 없어 비교할 수는 없

Paint it Rock -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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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드디어 80년대다. 락의 전성기라고 해야 할 지 상업화의 절정이라고 해야 할 지 마지막 불꽃이 피운 시기라고 해야 할 지. 1,2편에서 내가 엄청나게 많은 락 그룹들과 인물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랐다. 이토록 많이 알고 있을지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그저 동시대를 살아갔던 사람으로 음악을 들었다는 정도였다. 딱히 백판까지 찾아가며 듣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스스로 놀랐다. 너무 많다는 사실에. 그걸 거의 대부분 알고 있다는 사실에. 이제 80년대로 넘어왔다. 80년 대는 90년 대까지 이어진다. 80년 대에 활동했던 그룹들은 대다수가 90년대까지 활동을 했으니. 그들의 앨범 자켓을 보니 확실히 새로웠다. 그 전 세대 락그룹들은 이름과 노래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이제는 앨범도 알고 있는 것이었다. 앨범을 분명히 구입해서 들은 것도 아니었는데 앨범 디자인까지 알고 있다는 점이 스스로도 신기했다. 어떻게 내가 알고 있지..하는. 이 당시부터 전통 락으로 장르를 보기보다 팝과 결합된 다소 소프트한 락으로 본다. 그렇다해도 락의 정신을 이어받아 소개하는 책이라 듀란듀란같은 그룹은 잠시 언급이 될 뿐 제대로 소개되지는 않았다. 게다가 뉴키즈언더블럭도 그렇고. 한국에서는 엄청난 화제가 되었고 한국 사회 자체로도 국내에 방문했을 때 난리가 아니었지만. 열심히 읽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내가 이 그룹들을 알고 있는데 노래를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룹이 소개되며 노래도 언급은 되는데 노래 제목만 갖고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혹시 그룹만 알고 노래는 잘 모르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도 들었다. '책으로 배웠어요'처럼 그룹 이름만 알고 정작 노래는 들어 본 적도 없는것이 아닌가하는 의문. 시간을 내서 책에 나온 노래 제목을 하나씩 쳐서 들어봐야겠다. 알고 있으면 전부 다운받아 핸드폰에 저장하고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간만에 락스피릿이 되는 것인가. 이제 락은 죽은것인가. 락을 한다는 친구

13계단 - 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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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썼다. <책으로 변한 내인생>에 썼다. 어떤 책을 골라야 할 지 잘 모르겠다면 리뷰가 많은 책을 고르면 된다고. 최근에는 그런 걸 굳이 찾지 않고 도서관에서 손에 잡히는대로 고른다. 무엇인지 몰라도 끌리는 책을 택한다. 추리, 스릴러 장르는 워낙 방대해서 좀 망막한 면이 있다. 간만에 인터넷 서점에 가서 리뷰 숫자가 100이상 있는 것만 따로 적었다. 책을 읽는 것도 쉽지 않지만 읽고 리뷰를 쓰는 것은 더 쉽지 않다. (이런 리뷰를 1년에 약 200권 올리는 나란 놈은~~!!! ㅋㅋ) 정말 재미있거나 재미없어야 쓰게 마련이다. 그렇게 택한 책 중에 하나가 13계단이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도서관에서 빌리다 보니 이 책이 다카노 가즈야키 작품이었다. 정말로 재미있게 읽었던 <제노사이드>작가였다. 그 이후 이 작가의 작품을 찾았는데 불행히도 다른 작품이 없어 읽지 못했는데 이 작품이 떡하니 그 옆에 있었다. 더이상 고민할 필요없이 읽었다. 작가가 재미있게 쓰는데 읽고 싶어도 책이 없어 읽지 못했던 작가니 말이다. 일본 추리소설은 상당히 강점이 있다. 워낙 그분야 장르가 발달해서 그렇다. 그래도 일본보다는 유럽쪽이 좀 더 끌리는데 일본 추리소설은 약간의 호불호와 편차가 좀 존재한다. 가전제품을 사용할 때 뽑기라는 표현을 한다. 재수없으면 안 좋은 제품이 걸려 잔 고장이 많은 제품을 받게 된다는 의미다. 일본 추리소설도 그런 면이 있다. 재미있다고 해도 막상 읽어보면 나에게는 다소 재미가 덜 한 경우가 있었다. 유명 작가 작품중에서도 어떤 작품은 재미있고 어떤 작품은 재미없는 경우도 있다. 전작주의처럼 될 수 있는 한 작가의 작품이 재미있으면 다른 작품도 있는 편이지만 일본 작가는 그런 면에서 꼭 읽을 생각은 하지 않는데 다카노 가즈야키도 저번 작품은 별로였다. <KN의 비극>은 다소 추리장르도 아니고 조금 애매했다. 작가에 대한 신뢰가 그 작품 하나로 옅어지지 않아 읽게되었다. 어느 덧 일본

소설가의 일 - 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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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책을 읽어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때 마침 어느 곳에서 김연수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당시에 정확히 소설가인지는 몰랐다. 읽어야지 하면서 결국에는 아직까지 소설을 읽지 못했다. 꼭 읽어야 할 의무나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다보니 정작 소설은 읽지 않고 이렇게 수필을 읽게 되었다. 수필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것이 소설가가 글쓰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고 소설가의 삶이 어떤지 알려주는 책이다. 소설과 수필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큰 차이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글 초반에 꽤 재미있었다. 내용이 재미있다고 보다는 위트와 반전이 좋았다. 뭐라 이야기하고 가로 열고 엉뚱한 이야기나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웃게 만들었다.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내려놓고 썼다고 할까. 여타의 글쓰기 책과는 완전까지는 아니여도 참 다른 책이다. 책 제목인 <소설가의 일>답게 소설가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 어떻게 소설가가 되었고 소설가로 어떤 식으로 작업하고 소설은 어떻게 쓰는지 어딘지 은밀하면서도 소근소근하게 말한다. 때로는 뻥이지롱~~하는 느낌마저 든다. 실제 김연수작가가 어떤 성격이고 말하는 스타일인지 모르겠지만 책을 읽은 느낌으로는 나서서 말을 하고 청중을 휘어잡지 않지만 조용히 자기 할 말은 유머를 섞어가며 집중하게 만드는 스타일같다. 어딘지 능글능글할 것도 같고. 소설을 읽을 때 대체로 내용에 집중한다. 하지만 소설은 내용은 단순할지라도 묘사가 많다. 실제 소설의 핵심은 그런 의미에서 묘사가 참 중요하다고 여겼다. <소설가의 일>에서 그 부분을 정확히 언급한다. 묘사라는 표현보다는 디테일. 우리는 대체적으로 밥을 먹고  배가 부르다고 표현한다. 소설가는 그딴식으로 표현하면 안 된다. 사람들이 글을 읽고 묘사하는 인물이 배가 부르다고 느끼게 만들어야한다.  아주 커다란 놈이 입 안으로 들어온다. 매콤한 맛이 혀 끝을 자극하며 어서 빨리 보내달라고 외친다. 오물거리며 음미할 틈도 없이

보다 - 김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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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는 글쓰는 사람 중에는 최고봉이다. 아무리 글쓰기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를 해도 소설가의 능력을 따라 잡을 수 없다. 소설가는 현실을 그대로 글로 쓰는 것이 아니다. 새롭게 자신 만의 세계관을 창조한다. 그 세계가 현실과 밀접할 수도 있고 연관이 없을 수도 있다. 소설가가 살고 있는 현실을 무시하거나 무지할 수 없지만 소설가가 쓴 글은 도저히 흉내낼 수 없다. 아쉽게도 번역 책이 더 사랑을 받지만 - 나도 번역 책을 더 많이 읽음 - 한국어의 묘미는 소설가가 펼치는 세상이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을 관찰해서 쓰는 글이라면 얼마든지 쓸 수 있다. 그 글의 수준이 높건 낮건 상관 없이. 소설은 창작이라는 관점에서 아직까지 내가 도저히 시도만 하고 제대로 써 본 적이 없는 영역이다. 소설가는 소설로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지만 가끔 직접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며 세상만 만난다. 수필이라는 형식이다. 김영하는 한국에서 제법 인지도도 높고 열광하는 팬도 있다. 김영하 책을 몇 권 읽었는데 재미도 있었다.  최소한 소설가로 생활하며 먹고 사는데 궁핍하지 않다면 자신이 할 이야기는 마음것 할 수 있는 토대는 마련된다. 김영하는 다수의 매체를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 소설가로 그 분이 좋은가 여부는 내가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니다. 어차피 소설가는 작품으로 평가받는 위치다. 작품이 좋다면 그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문제 될 것은 없다. 쓰다보니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구구절절 엉뚱한 이야기만 하는지 모르겠다.  <보다>는 작가가 연작시리즈 중 첫번째 책으로 본 것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썼다. 보다라는 표현처럼 대부분 내용이 본 것에 집중한다. 눈이 달려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본다. 봐야 무엇인가를 쓸 수 있다. 느낄 수 있고 들을 수 있다고 하지만 눈 뜨고 보면서 느끼는 것이다. 듣는 것은 또 다른 감각이지만 인간은 여러 감각을 한 번에 함께 동원해서 느낀다. 각자 즉각적으로 받아들이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본다는 사실이

나는 매일 부동산으로 출근한다 - 현장이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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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를 시작하기에 앞서 크게 두 종류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나는 주식이고 하나는 부동산이었다. 그 당시 부동산을 접하며 주식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문제는 내 귀차니즘이었다. 부동산 책을 읽어보고 인터넷 글을 읽어보니 귀차니즘이 내 눈 앞을 가렸다. 또한 낯을 가리는 내 성격도 한 몫을 했다. 일단 친해지면 이상한 뻘 짓이나 싱거운 농담도 마구 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하루 종일 한 마디도 하지 않을 정도다. 이런 실정인데 나를 반기지 않을 지도 모르는 중개업소 문을 열고 중개업소 사장님에게 무엇인가를 문의한다는 것은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핀잔이나 받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부동산은 아무리 이론적인 접목을 하고 인터넷으로 수많은 조사를 해도 결국 현장을 가야만 해결된다. 그것도 한 두군데도 아닌 엄청나게 많은 곳을 가야만 한다는 피할 수 없는 사실은 나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그 후에 본격적으로 부동산 투자를 하게 되었지만 아쉽게도 여전히 내가 갖고 있던 생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중개업소 사장님이나 실장님 중에는 친절하게 응대하는 경우도 있지만 노골적으로 불편해 하는 경우도 본다. 잠재고객임에도 그 따위로 응대하는 중개업소 사장을 볼 때면 역시나 그 중개업소가 잘 안되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된다.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는 업소가 잘 될 수 없다. 어떤 고객이라도 다 잠재고객으로 거래가 가능한 걸 잊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책 제목인 <나는 매일 부동산으로 출근한다>는 부동산에서 만고불변의 진리다. 때렸다 죽어도 부동산은 현장이 답이다. 책의 저자는 두 명이다. 느낌이 이론적인 부분과 실무적인 부분을 둘이서 각자 나눠 쓴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부동산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입지라고 한다. 그 어떤 것을 능가하는 것이 바로 입지다. 입지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고민도 된다. 책에서 역세권, 초등학교와 명문교, 병원등을 중요하게 여긴다. 역세권은 지금 역이 생긴 곳보다는 앞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