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 김영하


소설가는 글쓰는 사람 중에는 최고봉이다. 아무리 글쓰기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를 해도 소설가의 능력을 따라 잡을 수 없다. 소설가는 현실을 그대로 글로 쓰는 것이 아니다. 새롭게 자신 만의 세계관을 창조한다. 그 세계가 현실과 밀접할 수도 있고 연관이 없을 수도 있다. 소설가가 살고 있는 현실을 무시하거나 무지할 수 없지만 소설가가 쓴 글은 도저히 흉내낼 수 없다. 아쉽게도 번역 책이 더 사랑을 받지만 - 나도 번역 책을 더 많이 읽음 - 한국어의 묘미는 소설가가 펼치는 세상이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을 관찰해서 쓰는 글이라면 얼마든지 쓸 수 있다. 그 글의 수준이 높건 낮건 상관 없이. 소설은 창작이라는 관점에서 아직까지 내가 도저히 시도만 하고 제대로 써 본 적이 없는 영역이다. 소설가는 소설로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지만 가끔 직접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며 세상만 만난다. 수필이라는 형식이다. 김영하는 한국에서 제법 인지도도 높고 열광하는 팬도 있다. 김영하 책을 몇 권 읽었는데 재미도 있었다. 

최소한 소설가로 생활하며 먹고 사는데 궁핍하지 않다면 자신이 할 이야기는 마음것 할 수 있는 토대는 마련된다. 김영하는 다수의 매체를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 소설가로 그 분이 좋은가 여부는 내가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니다. 어차피 소설가는 작품으로 평가받는 위치다. 작품이 좋다면 그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문제 될 것은 없다. 쓰다보니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구구절절 엉뚱한 이야기만 하는지 모르겠다. 

<보다>는 작가가 연작시리즈 중 첫번째 책으로 본 것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썼다. 보다라는 표현처럼 대부분 내용이 본 것에 집중한다. 눈이 달려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본다. 봐야 무엇인가를 쓸 수 있다. 느낄 수 있고 들을 수 있다고 하지만 눈 뜨고 보면서 느끼는 것이다. 듣는 것은 또 다른 감각이지만 인간은 여러 감각을 한 번에 함께 동원해서 느낀다. 각자 즉각적으로 받아들이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본다는 사실이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궁금했냐하면 솔직히 그건 아니다. 굳이 꼭 김영하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이 책에서 하는지 딱히 궁금하지는 않았다. 사실 그렇다. 책이 무엇인가를 알려준다. 그 부분이 내가 모르는 미지의 영역이다. 내 지적 허영심을 채워주는 글일리가 없다. 소설가가 쓴 수필이 얼마나 새로운 지식을 알려주겠는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뿐이지 몰랐던 부분을 어떤 추척, 관찰, 조사, 탐구, 연구 등으로 알려줄 일이 없다. 소설가는 그런 경우에 소설로 모든 것을 표현한다.
책에서는 주로 영화를 이야기한다. 보는 것은 참 많을텐데 그 중에서도 영화 내용을 갖고 작가만의 사고를 보여준다. 기존에 기고했던 글들을 묶어 펴 낸 책이라 한다. 어느 매체에 기고했는지 모르겠지만 영화가 주이고 책도 나온다. 영화중 내가 본 영화도 있고 알고 있지만 못 본 영화도 있고 처음 듣는 영화도 있었다. 이럴 때 독자들이 원하는 것은 작가만이 하는 사고다. 나도 본 영화를 도대체 이 작가는 무엇이라고 할까.

수필 종류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내면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내 포지션이 어떤지 유추가능하게 해주고 어떤 상황과 현상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갖고 있는지 읽는 사람에게 알려준다. 내 경우에도 리뷰나 여러 글을 통해 다양한 내 사고를 알린다. 알릴려고 한 것이 아닌데 결과는 그렇게 되었다. 어느 친구가 나에게 "핑크팬더님은 가끔 헛갈려요."라고 했다. 글을 읽어보면 이런 포지션을 갖고 있거나 느끼는데 어떤 글은 또 정반대의 포지션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별 생각은 안 들었다. 대체적으로 특정 포지션을 갖고 있고 특정 정당을 주로 투표하지만 그렇다고 올바른 것을 올바르지 않을 때는 반대 포지션도 갖게 된다. 나이를 먹고 가진게 많아지만 자연스럽게 보수적으로 변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반대로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대체적으로 사회부조리가 보이면서 진보적으로 된다. 재미있게도 엄청나게 많은 학식을 갖고 있는데도 그렇지 않은 다수의 사람도 있지만 내가 볼 때는 대체로 그렇다. 그런 부분들이 결합되어 지금의 내가 된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 변할 것이다.

책에서는 철학적인 사유나 작가만의 독특한 사고를 엿보는 것보다는 작가의 사생활을 읽을 때 재미가 커졌다. 사고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라며 넘어갈 수 있지만 작가의 사생활을 읽으면 관음증적인 감각이 살아나며 스스로 공개했지만 훔쳐보는 재미가 있다. 특히 작가가 이야기하는 내용에 등장하는 인물이 나도 아는 유명한 인물이면 더더욱 관심있게 읽으며 살며시 웃음짓는다.

김영하 산문 <보다>에는 꽤 많은 일러스트가 등장한다. 워낙 많이 나와 작가의 이름을 찾아보니 맨 마지막에 조그맣게 실려있다. 좀 아쉬웠다. 이 책을 이토록 돋보이는 역할을 하는 디자인 작가도 난 이 책 표지에 당당히 함께 실려있어야 한다고 본다. 김영하 작가의 명성이 커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겠지만 일러스트가 이렇게 많다면 꽤 많은 공을 들였고 이 책 전반에 함께 참여한 작가라 해도 될텐데 말이다.

솔직히 <보다>보다는 다른 연작인 <읽다>에 좀 더 관심이 있었는데 도서관에 <보다>만 있어 가볍게 읽으려고 택했다. 산문을 읽을 때 제일 리뷰쓰기가 힘들다. 특정 주제를 갖고 쓴 책이 아니라 다양한 이야기를 쫘아악 펼쳐놓고 알아서 읽으세요라는 분위기라서. 덕분에 리뷰가 리뷰가 아니라 엉뚱한 이야기만 주절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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