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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문 고등학교 수상한 축제 - 시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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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편소설이면서 추리형식의 소설. 이런 건 쉽지 않을 듯하다. 짧은 내용 안에 기승전결이 다 들어가야 하는데 뭔가를 숨기고 이를 해결하는 것까지 전부 넣으려면 엄청나게 어렵지 않을까. 이런 종류의 글을 쓸 엄두도 내지 않는 나로써는 대단하다는 생각뿐이 안 든다. 이런 글을 쓰는 작가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귀문 고등학교 수상한 축제>는 전작인 <귀문 고등학교 미스터리 사건일지>의 후속작이다. 같은 학교라는 의미니 또 출연(?)한 캐릭터도 있다. 당시에 글을 썼던 작가 중에 또 썼으니 당시에 출연한 캐릭터를 다시 소환해서 연결성을 갖게 해줬다. 사실 이전 작에 대해 자세한 내용이나 캐릭터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읽다보니 생각이 났다. 귀문 고등학교라는 공통적인 걸 제외하면 각 작가마다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해서 소설을 썼다. 귀문 고등학교가 이전 작에 이어 마저 읽다보니 친숙해지고 진짜로 있는 학교처럼 느껴졌다. 이번에 각 소설마다 마지막이 비슷하게 끝난다. 경찰차 소리가 들린다는 점이다. 경찰차가 학교에 오는 소리가 마지막 부분에 들리면서 끝이 난다. 이번 소설의 소재는 축제다. 귀문 고등학교에서 열리는 축제가 모든 소설의 소재다. 이러다보니 같은 학교에서 벌어진 사건이 동일한 날에 동시에 열린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볼 때는 각 사건이 합쳐지면 무려 5건이나 되니 경찰차가 5대나 왔어야 할텐데 말이다. 학생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학교에 이 정도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면 학교가 난리나지 않을까 생각된다. 저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청소년 소설이라는 걸 몰랐다. 청소년 소설이라는 분야가 따로 있어 이렇게 펴내지는도 몰랐다. 청소년이 나올뿐이지 딱히 이걸 청소년 소설이라고 하기도 그렇다. 물론 읽어보면 다소 유치한 장면들이 없지 않아 있다. 그건 아마도 청소년 소설이라는 자각을 하고 작가가 썼으니 그랬으리라. 덕분에 좀 더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보다 더 좋다고 하면 좋은 건 청소년 소설(??)답

개장 전, 아직 켜지지 않은 모니터 앞에서 - 트레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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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과 표지가 꽤 인상적이었다. <개장 전, 아직 켜지지 않은 모니터 앞에서>라는 제목이 무척 신선하게 느껴졌다. 표지도 담백한 것이 오히려 역설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일반 주식 투자 책과는 뭔가 결이 다르다는 인상이었다. 주식 트레이더의 책은 대체적으로 자신의 투자 스킬을 알려주는 경우가 많다. 온갖 차트를 보여주면서 이를 통해 눌림목이거나 진입 타이밍을 알려주는 책이다. 자신이 어떤 식으로 트레이딩을 해서 돈을 벌었는지 아려주는 경우가 대다수다. 가끔 이와 달리 차트가 전혀 책에 포함되지 않은 책이 나온다. 이런 경우는 순수하게 자신의 철학에 대해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많다는 표현을 했지만 그런 책은 극히 드물다. 후자의 경우는 내가 그들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대체적으로 진짜 트레이딩을 통해 돈을 버는 사람인 경우다. 자신이 어떻게 수익을 냈는지 알려주기 보다는 어떤 철학을 근거로 주식 시장을 바라보고 대처하는지 설명한다. 주식 책을 읽는 것은 뭔가 돈버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이건 맞다. 문제는 기술만 갖고 있는다고 주식 시장에서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만이 갖고 있는 철학과 원칙인 경우가 더 많다. 매수와 매도에 대해 룰을 정하고 이를 지키는 원칙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싸게 사고 비싸게 산다는 진부한 표현을 지키는 것은 엄청나게 쉬운 듯 보여도 막상 실전에서 하려면 무척이나 어렵다. 거기에는 감정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하락을 했을 때 공포라는 감정이 밀려오고, 상승할 때는 반대로 욕망이라는 감정이 쏟아진다. 이런 심리를 제대로 다스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원칙이다. 원칙은 누군가 정해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수많은 투자자가 있지만 그들마다 전부 자신만의 원칙을 갖고 있다. 각자 다양한 방법을 하면서 터득한 것이라 남들과는 다르다. 그 원칙을 다른 사람이 한다고 잘 되는 것은 아니다. 기술적으로 차트를 보며 이렇게 하라고 해도 막상 적용하는 것이 다른 이유다. 그런 심리를 이겨내는 것이 바로 원칙이다. 

등대지기들 - 외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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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 있을 때 어딘지 더 호기심이 생긴다. 세상에는 소설보다 더 말도 안 되는 현실이 있고, 현실보다 더 진짜같은 소설도 있다.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다고 하니 과연 어떤 내용이었기에 작가의 관심을 끌었느냐가 제일 궁금해진다. <등대지기들>은 제목처럼 등대에서 벌어진 사건을 기초로 한다. 등대지기였던 세 명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다. 그 후로 그들을 찾을 수가 없었다. 사람이 실종이 되어도 물에 밀려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한 명이면 모르겠는데 무려 3명이나 사라졌는데 아무도 찾지 못했다니 놀라운 일이다. 이를 근거로 작가는 자신의 상상력을 펼쳐 책을 썼다. 책은 그런 면에서 다소 추리소설같은 느낌이지만 정통 문학소설이다. 책을 읽는 게 꽤 버거웠다. 거의 일주일을 읽은 듯 하다. 얼마나 디테일하게 묘사를 하는지 거의 500페이지를 가득 채운다. 의문이 들었다. 책에서 작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찾아다니며 묻는다. 그들은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그들에게 질문을 할 때마다 답변을 하는데 얼마나 세밀하게 묘사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일반 사람이 그렇게 묘사하며 설명할 것 같지는 않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세밀하게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현장을 묘사하지 않는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이야기꾼이나 그렇지 않을까한다. 책에 나온 모든 사람들은 그렇게 한다. 여기에 작가가 각 상황을 설명할 때도 세세히 장면이나 상황을 묘사하니 그걸 읽는 것만으로도 몇 페이지가 훌쩍 넘어가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등대지기인 3명과 그들의 유족 이야기다. 사건일 벌어졌던 1972년과 다시 이를 추적하는 1992년이 교차로 보여진다. 72년은 등대에 머물던 사람들이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묘사한다. 92년은 남은 사람들에게 찾아가 한 명씩 질문을 던지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지금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알아가는 내용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등대와는 다소 다르다. 바닷가에 있는 등대는 육지와 연결되어 있어

경제학 오디세이 - 돈의 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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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를 배우는 방법 중에 하나가 시대순으로 경제와 관련된 사상에 대해 연대기로 쫓아가는 것이다. 시대에 따라 경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떤 식으로 변했는지 알게 된다. 대체적으로 이는 당시를 살았던 경제학자들의 생각을 발표된 논문으로 알게 된다. 경제학자라고 하지만 당시에는 딱히 경제라는 학문이 있던 것은 아니라서 철학자에 좀 더 가까웠다. 이를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수학과 연결이 되고 최근에는 심리와 연결되어 경제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대체적으로 경제라는 걸 알려주는 책들이 약간 고상한 측면이 있다. 경제는 우리 실생활에서 아주 밀접하게 연관이 있으나 이를 설명하는 형식이나 방법은 무척이나 어렵다. 잘 모르는 단어뿐만 아니라 근대에 들어서 수학까지 접목하니 더욱 어렵다. 이전까지는 경제는 썰이 다소 중요했다. 스토리를 근거로 경제를 설명했다. 수학이 결부되면서 어떤 경제적인 현상을 숫자로 표시할 수 없으면 다소 터부시되는 느낌도 들었다. 최근에 들어서는 아니다. 숫자까지 결부되었을 때 인간은 무척이나 합리적인 존재라는 개념이 강했다. 심리와 결부되며 인간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지 못한 감정적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이러다보니 다양한 군중 실험 등을 통해 경제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런 변천사를 하나씩 배우는 것은 꽤 재미있다. 지금 와서 굳이 알아놓을 필요가 없다고 해도 알아둬서 나쁠 건 하나도 없다. <경제학 오디세이>는 1713년 니콜라스 베르누이부터 시작한다. 베르누이는 경제학보다는 수학자라 표현한다. 여기서 꽤 재미있는 건 경제라는 걸 설명할 때 좀 고상한 철학과 개념으로 알려주는데 이 책은 아니다. 아주 흥미롭게도 - 나한테만 그런지 몰라도 - 돈을 근거로 설명한다. 사람들이 돈을 보는 개념과 방법 등을 근거로 설명을 하니 좀 더 피부에 와 닿는 느낌이었다. 1,000원을 받는다. 그러면 기쁠까. 별 감흥이 없을까. 이는 그 돈을 받은 사람의 상황에 따라 다르다. 10억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1,000원을 주면 아무런 효용이 없다.

시경 - 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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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서삼경이 있다. 예전에 동아사이에서 라고 표현하지만 아마도 중국과 한국에서 유독 중시했던 공부였다. 솔직히 중국에서도 그랬는지 알아보지 않아 잘 모르겠다. 한국에서는 조선시대에는 확실히 그런 걸로 안다. 무엇보다 출세를 위해 배워야 했고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도 배워야 했던 것 같다. 드라마 등을 볼 때 조선시대에서 공부를 한다면 늘 사서삼경이라고 한 걸 보면 말이다. 어떻게 보면 유학의 경전이라고 할 수 있다. 유학이 종교는 아니지만. 대학, 논어, 맹자, 중용을 사서라고 하고 시경, 서경, 역경을 삼경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사서삼경을 달달 외웠던 걸로 안다. 거의 툭치면 술술 나올 정도로 한 것이 아닐까한다. 이걸 외운 후에 이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계속 하면서 깊고 넓고 확장하는 과정을 거쳐 자신만의 사고를 갖추게 된 것이 아닐까한다. 사람에게 어떤 사상이 중요한 것은 그를 토대로 세상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사서삼경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깨우치고 그에 맞는 사고에 따라 살아간다. 이러니 사서삼경은 실제로 조선시대를 지배했던 사상이다. 어릴 때부터 이를 배운 것은 무엇보다 지배자에게는 주류 사회에 들어가기 위한 당연한 과정이었다. 이를 모르면 주류사회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이해하기 힘들지 않았을까. 그 덕분에 조선시대에 맞는 삶을 살아갈 수 있었을 듯하다. 한편으로 이런 것들을 양반이나 양반이 되려는 사람에게만 전달하며 더 공교하게 체제를 구축하는 시스템이었다. 현대에 들어 고전이라 불리게 돈 사서삼경이다. 이 중에서 이 책인 <시경>은 시를 모았다고 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시는 인간의 다양한 희노애락을 표현하는 도구다. 과거에는 특히나 시가 가장 으뜸이지 않았을까한다. 시경은 원래 3천편 정도 있었다고 한다. 그 중에서 공자가 311편으로 줄였고 현재는 그 중에서도 305편 정도만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원래 시라는 건 그 본연의 언어로 읽어야 느낌과 뜻이 제대로 전달된다. 이 책은 그런 시경이 전부 한자로 되어 있기에 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