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댈러웨이 부인 - 의식의 흐름

 

댈러웨이 부인은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이다. 하룻동안 벌어지는 일이다. 댈러웨이 부인이 제목에 있으니 당연히 댈러웨이 부인을 기준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고 생각했다. 막상 소설을 읽으니 이게 꼭 그렇지 않았다. 댈러웨이 부인을 기준으로 다양한 인물이 나온다. 보통 이렇게 인물이 나올 때는 댈러웨이 부인의 관점에서 본다.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면 각자의 이야기가 나오긴 했지만 중심은 댈러웨이 부인이 된다. 이 소설을 그런 식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이 소설은 모더니즘 작품이다. 뭔가 거창하게 느껴지는데 의식의 흐름대로 소설이 전개된다. 이런 형식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대표적이다. 읽고자 욕심만 내고 엄두를 내지 못한 소설이다. <댈러웨이 부인>을 읽어보니 역시나 이유가 있었다.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읽었더니 소설의 내용을 쫓아가는 것이 힘들었다. 댈러웨이 보인이 파티를 주최하고 끝내는 것까지 전체 내용이다. 그럼에도 읽는데 어려운 이유는 단 하나였다.

소설에서 새롭게 인물이 등장하면 해당 인물의 관점에서 모든게 진행된다. 댈러웨이 부인 관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댈러웨이 부인의 생각과 시선에 따라 진행된다. 그러다 새로운 인물이 나오면 그 인물의 관점과 생각과 시선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한 마디로 댈러웨이 부인과는 1도 상관없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예를 들어 댈러웨이 부인이 누군가를 만났다. 그렇다면 보통 댈러웨이 부인 관점에서 상대방을 묘사하고 서로 사건이 진행된다. 상대방의 생각이 나올 때가 있어도.

이 소설은 그렇지 않다. 갑자기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면 그 사람 관점에서 모든 게 진행된다. 그렇다고 그 사람의 관점에서 댈러웨이 부인과 사연이나 생각에 대한 것도 아니다. 그런 부분도 나오긴 하지만 그때부터 자신의 생각이 흐른다. 댈러웨이 부인에 대해서도 아직 잘 모르는데 갑자기 나타난 사람이 주인공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신의 생각을 독자에게 일방적으로 알려주기 시작한다. 그 사람에 대해 제대로 알 틈도 없이 또 다른 인물이 나타난다.

또 다른 인물이 다시 자신의 이야기를 독자에게 해댄다. 이러다보니 솔직하게 책을 다 읽었지만 이렇다하고 기억나는게 많지 않았다. 의식의 흐름대로 내용이 전개된다고 할 때 내가 제대로 의식이 없었나 보다. 그나마 제목에 등장했으니 댈러웨이 부인과 셉티머스가 제일 비중을 많이 차지한다. 댈러웨이 부인이 파티를 주최하며 사람들을 초대한다. 초대하지 않았지만 셉티머스가 러시아에서 돌아온다. 댈러웨이 부인과 썸이 있었는데 현재는 헤어진 상태다.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표현처럼 현재는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한 상태다. 셉티머스는 다른 여자와 사귄걸로 나오는데 여전히 댈러웨이 부인에 대해 잊지 못하고 있다. 또는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댈러웨이 부인을 보는 순간 자신의 마음을 확인한다. 군인이었으나 현재는 낙오자라고 할 수 있는 상태였다. 셉티머스에 대해서는 꽤 길게 설명하는데 그마저도 다소 빠른 시간 내에 퇴장한다. 그러니 뭔가 특정한 인물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뭔가 적응 되기도 전에 다른 인물로 교체된다.

또한 초반 적응이 힘들었던 건 달러웨이 부인이라고 호칭이 나오지 않고 클라리사라고 한다. 풀 네임이 클라리사 댈러웨이 부인이다. 그러니 친근하게 부를 때는 클라리시고, 격조 있게 부를 때는 댈러웨이 부인이다. 우리가 소설이나 영화와 같은 작품을 볼 때 대체적으로 주인공과 주변 몇 명의 인물로 좁힌다. 그래야 작품을 보는 사람이 어렵지 않다. 우리가 누군가를 새롭게 알게 되면 한동안 그 사람을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각자 살아온 인생이 있기 때문이다.

모임에 갔을 때 바로 옆에 있었던 사람을 제외하면 기억도 남지 않는다. 그 사람마저도 이야기를 좀 했으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다시 만나도 가물가물하다. 실생활에서도 이럴진대 소설이나 영화에서는 더욱 심하다. 그러니 최대한 인물을 좁혀 설명한다. 그렇게 해도 주인공이나 기억한다. 이를 방지하는 건 비중있는 조연이거나 인지도 있는 사람이 출연할 때다. <댈러웨이 부인>은 그런 면에서 읽기 힘든게 당연하다. 내가 이 책을 읽어 단 한 명도 제대로 인지를 못하고 있다. 댈러웨이 부인이나 셉티머스도 그나마 이름이 자주 나와 기억하는 정도일 뿐이다. 실제로 그들이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이 책에 대해 이런 표현이 있다. '읽을 때마다 매번 새롭다.' 그럴 수밖에 없다. 보통 어지간해서 같은 책을 2번 읽는 경우가 없다.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내용을 굳이 또 읽을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다. 그렇다면 <댈러웨이 부인>은 또 읽을 필요가 없을까. 그 관점에서 본다면 또 읽어도 분명히 새로울 듯하다. 책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읽을 때마다 새롭다면 그것도 괜찮다고 본다. 워낙 명성이 높은 책이라 내가 읽었다는 건 분명히 인식한다는 점이 거부할 듯하다.

이 책을 읽으려고 도전할 때마다 너무 힘들게 읽었는데 또 읽어야 할까..하고 말이다. 한편으로는 댈러웨이 부인은 파티를 주최할 정도로 풍요로웠다. 자신에게 최대의 일이 바로 파티를 개최하는 것이었다. 그건 당시에 어느 정도 사는 집에서는 당연한 일과였다. 그게 꼭 무료한 삶을 버티는 힘은 아니라고 본다. 당시를 살아가는 삶 중에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된다. 언제나 맥락을 알아야 누군가를 알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댈러웨이 부인의 맥락을 제대로 몰라 어떤 사람인지 확실히 모르겠다.

함께 읽을 책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하기 싫은 일을 하는 힘 - 받아들이기

하고 싶은 일만 하고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는 삶.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삶이다. 부자를 꿈꾸는 이유 중 하나도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다는 착각때문이다. 성공한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한 것이 아니다. 하는 일을 좋아했다. 어느 누가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으며 살 수 있을까. 그런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어느 누구도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으며 살지 못한다. 하기 싫어도 억지로 해야 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이다. 숙명이다. 그게 인생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부지런하다. 성공이라는 단어에 대한 정의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다수 사람들이 떠올리는 성공한 사람의 공통점이다. 어떻게 보면 그와 나는 딱 하나의 차이가 있다. 그는 하기 싫어도 끝까지 해 냈고 난 그렇지 못했다.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는 삶은 없다. 하기 싫은 일을 어떻게 하느냐가 오히려 관건이다. 하기 싫다고 안 하면 당장은 편할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 나에게 더 큰 하기 싫은 일로 돌아온다. 심적으로, 육체적으로 같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싫다. 지옥철을 타고 출근하기 싫다. 상사의 잔소리가 듣기 싫다. 억지로 어색한 모임에 참여하고 싶지 않다. 늘어지게 집에서 멍하니 시간이나 때우고 TV나 보며 보내고 싶다. 이런 것들은 전부 바램이다. 현실에서 그다지 실행 가능성이 적다. 어쩌다 잠깐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더욱 빛을 발한다.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을 직접 체험해 보니 더욱 그런 삶을 꿈꾼다. 막상 매일 같이 그런 삶을 살게되면 그마저도 새로운 하기 싫은 일이 된다. 매일같이 집에서 TV나 보며 빈둥거리면 행복할까. 어쩌다 하는 행동이 재미있고 좋은 것이지 반복되면 지루해진다. 놀랍게도 하기 싫은 일을 해 낼 때 대부분 성장한다. 습관적으로, 태생적으로 편한 걸 찾게 되고 회귀본능처럼 하게 된다. 정작 그걸 선호하더라도 불행히도 현대인에게 그럴 자유가 부족하다. 정확히 표현하면 도태된다. 꼭 성공해야 할 이유는 없어도 현대인으로 살...

100배 주식 불변의 법칙

  10배도 아닌 100배 오르는 주식이 있을까. 분명히 있다. 근데 보통 사람들은 10배 정도 이야기를 많이 한다. 100배 이야기하는 사람은 거의 보질 못했다. 10배도 일반인이 달성하기 거의 불가능한 수익률이다. 대부분 2~3배만 수익이 나도 즐거워서 함박 웃음을 짓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10배도 아닌 100배는 다소 불가능하게 여겨진다. 또한 100배는 뭔가 터무니 없고 실현 가능성조차도 없는 수익률처럼 느껴진다. 제목에 100배가 들어가니 가능하다는 뜻이다. 10배는 1년 내에 가능한 경우가 있다. 극히 드물지만 아주 가끔 가능하다. 이건 경우는 일반적인 기업은 아니다. 기업 실적보다는 테마가 더 중요하다. 당시에 맞는 테마를 타는 데 기업이 어느 정도 실적은 바탕이 되어야 한다. 당장 실적이 좋지 못해도 갈수록 실적이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도 있어야 한다. 당장은 마이너스가 되더라도 향후 몇 년 내에 지금보다 실적이 최소 몇 배는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를 줘야한다. 그럴 때 짧은 시간에 2~3배 주가가 상승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도 대체적으로 몇 년 안에 10배가 된다는 뜻이다. 절대로 100배는 불가능하다. 기본적으로 주가가 100배가 되려면 단기간으로 불가능하다. 주식을 하는 사람마다 단기와 장기 개념은 다를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1년만 넘어가도 장기일 수 있다. 그 정도로 기업을 보유하고 있는 게 드물다는 뜻이 된다. 내 경우에는 10년 정도 보유한 기업은 있었다. <100배 주식 불변의 법칙>은 100배가 될 기업을 소개한다. 기업을 소개하는 게 아닌 투자를 알려준다. 제목에 혹해서 책을 읽게 되는데 알려주는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무조건 장기투자다. 아까 5년이라는 시간을 말했지만 책에서는 말하는 기간은 그보다...

돈의 권력

  돈에 대해서는 참으로 할 말이 많다. 누구나 할 말이 많다. 직접적으로 내가 갖고 있는 돈으로도 할 말이 많다. 누구나 돈을 필요로 한다. 다들 돈이 많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느 누구도 적은 돈이 좋다는 사람은 없다. 예외 없는 법칙은 없으니 싫다고 하는 사람도 있긴 할테다. 그래도 물어보면 돈이 있으면 좋다고 하지 않을까. 그만큼 돈이라는 건 요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특별한 일이 없다면 대다수 사람에게는 기승전 돈이지 않을까한다. 어떤 걸 선택해도 그게 돈이 되느냐가 핵심이다. 직업도 마찬가지다. 큰 돈이 되면 직업이 어떤 것이든지 별로 개의치 않는 세상이다. 오히려 대단하다고 생각을 할 정도다. 돈은 최근에 생긴 제도처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아주 오래 되었다. 아주 예전에는 물물교환으로 했다고 하지만 그건 아주 짧았다. 어떤 형태로든 돈이라는 걸 통해 사람들은 경제활동을 했다. 과연 그 돈은 무엇인지에 대해 학술적으로 접근해서 알려주는 책이 <돈의 권력>이다. 돈은 분명히 권력이다. 그걸 부정할 사람은 없다. 우리가 가끔 엄청난 돈의 유혹을 물리치는 사람을 박수치며 칭찬하는 이유다. 현대 사회에서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학 권력을 갖고 있는 게 돈이다. 여러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도 돈에는 망설이게 된다. 나는 돈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도 액수의 차이일 뿐이다. 액수가 올라가면 저절로 흔들린다. 액수가 작아서 양심을 지킬 수 있다. 이러한 돈은 단순히 개인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제도와 사회 시스템에서도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돈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 지 책에서는 알려준다. 책을 읽을 때 흥미로운데 막상 이걸 글로 쓰려면 막막할 때가 있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