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20의 게시물 표시

본질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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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부분 생각을 한다. 문제는 현재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이 내 것인지, 주입된 것인지 여부가 불분명하다. 스스로 자각을 하지 못할 정도로 미묘하기 때문에 어렵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입된 생각은 내 생각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자연스럽게 처음에는 내 생각이 아니라 판단했던 것이 저절로 내 생각으로 고착할 수 있다. 남들이 어떻게 보든지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고 믿는다. 이 부분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하며 고찰하고 사색하는 시간을 가질 틈없이 말이다. ​ 이러다보니 모순이 생길 때가 있다. 숙성된 생각이 아니라 가치가 서로 충돌하며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괴리감이 발생한다. 이럴 때 대부분 생각으로 이를 극복하기 보다는 보다 자극적인 반응에 노출되며 또 다시 생각없이 남이 주입한 것을 맞다고 믿으며 자기강화를 하는 경우가 많다. 어느 순간부터 타성에 젖어 무엇이 올바른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고 자신이 하는 행동에 정당화가 더 중요해지는 순간이 온다. 저절로 내가 맞고 남들은 틀리다는 아집에 빠지게 된다. ​ 이를 위해서 항상 나 자신과의 대화가 중요하다. 누구도 이를 지적하고 조절할 수 없다. 오로지 나만이 할 수 있다. 어떤 사고가 나에게 주입된 것이 중요하지 않다. 아무것도 모르니 주입되는 것이 맞다. 그런 과정에 거쳐 나만의 고유한 것을 갖게 되는가가 핵심이다. 이 단계까지 가는 길은 지나한 여정이고 쉽게 결론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이런 숙성의 시간을 거친 사람은 자신만의 원칙과 주관이 생긴다. 이를 근거로 세계를 바라보고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게 된다. ​ 여기서 또한 남들이 나에게 바라는 외재적 가치가 있고, 내가 바라는 내재적 가치가 있다. 무엇이 옳다의 여부는 아니다. 나보다 경험과 지식이 많은 사람들의 충고는 잘 못된 것은 아니다. 나도 아는 게 없으니 그들의 충고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중요한 지점은 그들은 타자일 뿐이다. 그 모든 것을 실행하고 책임지는 것은 나 자신이다. 누구도 날 대신할

부자의 독서 - 배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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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이 책으로 공부를 했다. 공부라는 것에는 엄청나게 넓은 스펙트럼이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도 돈과 연관되어 공부를 하려 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은 너무 많고 배워야 할 곳은 전혀 없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독서 뿐이었다. 그렇게 독서로 배우고 익히고 실천하며 조금씩 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고 있다. 엄청나게 대단한 성취감을 얻지 못했어도 나름 괜찮다. 독서를 통해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하찮지 않았을까. ​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간증을 하지만 나만큼 증인이 되는 사람도 없을 듯하다. 완전히 모지래기라 할 수 있는 내가 이 정도까지 온 것은 독서가 큰 역할을 했다. 딱히 내세울 것도 없고 학력은 더더욱 어디가서 명함도 내밀지 못할 내가 어느 정도 인텔리하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킨 것도 독서가 한 몫을 했다. 그렇게 독서한지 어느덧 20년이 되었다. 스스로 생존독서라고 한 독서가 말이다. 처음 돈이라는 걸 배우기 위해 시작할 때와 지금은 차이가 없다. ​ 당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게 책이 많이 나왔다. 당시와 비교해서 몇 배나 많은 책이 1년에 나오고 있다. 그때보다 사람들은 책을 더 안 읽고 있다. 1인당 독서 권수는 오히려 줄었다. 20년 전에도 독서는 사실 부족한 걸 배우기 보다는 문사철에 가깝긴하다. 여전히 문사철이 모든 것의 중심이라고 하고 돈을 벌기위해서도 꼭 필요하다는 말은 한다. 그럼에도 그건 좀 더 수준이 올라갔을 때나 가능하다. 처음에는 단순한 방법을 배워야만 한다. ​ 흥미롭게도 최근에는 독서와 관련된 것들도 엄청나게 많아졌다. 예전에 비해 독서량은 줄었는데도 독서 관련된 다양한 것들이 많아진 것은 아이러니하다. 그 중에 하나가 엑기스를 알려주는 방송이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 책을 읽을 수 있게 독려도 하고 간단한 내용도 전달한다. 거기에 책을 읽은 후에 각자 자신의 생각을 알려준다. 이걸 딱히 좋아해야 할련지 애매하다. 정작 사람

왜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았을까? - 궁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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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다. 과거에는 하나씩 하나씩 인류가 진화를 거듭해서 호모 사피엔스가 되었다고 말했다. 현재는 다소 다르다. 비슷한 종족이긴 해도 네안데르탈인 등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된 건 아니라고 한다. 호모 사피엔스가 존재할 때 네안데르탈인도 있었다. 그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진화한 것은 아니고 서로 다른 종족이었다는 뜻이 된다. 서로 경쟁하고 어느 정도는 세력권을 형성했다고 하니 유사성이 많을 뿐 우리 조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 차례로 진화했다고 정확히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 최근 학설인 듯하다. 호모 사피엔스가 지금처럼 인류 역사에서 최종적 승자가 된 여러 이유가 있다. 그 중에서 이 책 <왜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았을까?>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러 종이 나타났는데 결국 대부분 현재는 멸종되었다. 유일하게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았다. 그 이유 중 첫번째는 도구의 활용이다. 인간은 무척이나 나약한 존재다. 짐승을 만나 싸우면 이긴다는 것은 여러모로 말이 안 된다. ​ 도구없이 1대1로 만나면 무조건 도망가야 한다. 도저히 이길 방법이 없다. 이걸 극복한 것이 바로 도구다. 도구를 활용한 덕분에 인간은 자신보다 힘도 쎄고 훨씬 날렵한 동물을 만나도 극복할 능력을 갖게 되었다. 사냥을 할 수 있은 덕분에 또한 다양한 음식을 섭취할 수 있었다. 원래 야채만 먹던 호모 사피엔스가 추위가 오면 먹고 살 방법이 없다. 이럴 때는 무엇이라도 먹어야 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이 순간에 이유는 정확히 모른다고 하는 것 같은데 잡식성으로 변했다. ​ 다른 종이 편식을 했다면 호모 사피엔스는 고기까지 먹는 걸로 잡식성으로 스스로 변했다. 생존을 위해서 가장 최고의 방법이긴 하다. 잡식성으로 변하고 싶어도 고기를 먹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럴 때 바로 도구를 만들어 짐승을 사냥할 수 있게 되어 이를 해결한 덕분에 살아남았다. 다음으로는 옷이다. 날이 좋으면 옷을 입지 않아도 상관없다. 지금도 아프리카와 같은 밀

마흔 완전하지 않아도 괜찮아 - 항상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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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확실히 모르지만 난 나이에 대해 다소 무감각하다. 딱히 나이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가 몇 살이라는 자각을 그다지 하며 살지도 않는다. 흔히 아홉수라는 게 있다. 아홉살에서 열살이 되는 시기에 힘들어 한다는 뜻이다. 난 그런 것도 없었다. 딱히 나이를 신경 쓰며 살지 않으니 그런 듯하다. 가끔 아주 심하게 아홉수를 앓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솔직히 그러려니 했다. 나에게 20에서 30으로, 30에서 40으로, 40에서 50으로 변하는 것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다. ​ 내가 나이를 먹었을 뿐 작년과 올해는 그다지 다르지 않다. 물론 20대와 30대는 다르다. 내가 아무리 나이를 신경쓰지 않는다고 해도 사람들의 시선이 다르니 말이다. 그렇게 볼 때 아직까지 난 철이 안 든것이 아닐까도 싶다. 이런 이야기를 하기엔 한국에서 공식적인 나이로 볼 때 주책이라는 표현이 맞는 나이가 되긴 했다. 스스로 나이를 의식하지 않을 뿐 나이에 맞는 행동은 한다. 아무리 신경쓰지 않아도 내가 20대처럼 행동할 수는 없다. 그건 스스로도 안다. ​ 그저 나는 나일뿐이라는 생각이다. 내가 현재 내 나이를 부정한다고 달라 질 것도 없다. 남들이 보는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와 달라도 그것도 나다. 그건 인정한다. 다행히도 내가 좀 동안이다. 나이에 비해 젊게 보인다. 이건 어릴적부터 변함이 없었다. 20대 초반에 고등학생이라 해도 믿었고, 30대 중반에도 대학생으로 날 불러준 사람도 많다. 그 덕분에 그다지 나이를 별 신경쓰지 않았던 듯하다. 나이에 맞는 행동규범은 분명히 있다. 딱히 이것이다라고 정해지지 않았지만. ​ 의외로 나이와 관련된 책이 많다. 자기 계발 서적에서도 나이를 꼭 꼬집어서 뭘 해야 한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런 책이 가끔 엄청난 인기를 끌기도 한다. 생각해보니 20살이라는 표현으로 된 책은 드물다. 서른살이나 마흔, 오십도 어느 정도 있는데 또 다시 60살이 책 제목으로 있는 경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