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을 보라


우리는 대부분 생각을 한다. 문제는 현재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이 내 것인지, 주입된 것인지 여부가 불분명하다. 스스로 자각을 하지 못할 정도로 미묘하기 때문에 어렵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입된 생각은 내 생각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자연스럽게 처음에는 내 생각이 아니라 판단했던 것이 저절로 내 생각으로 고착할 수 있다. 남들이 어떻게 보든지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고 믿는다. 이 부분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하며 고찰하고 사색하는 시간을 가질 틈없이 말이다.
이러다보니 모순이 생길 때가 있다. 숙성된 생각이 아니라 가치가 서로 충돌하며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괴리감이 발생한다. 이럴 때 대부분 생각으로 이를 극복하기 보다는 보다 자극적인 반응에 노출되며 또 다시 생각없이 남이 주입한 것을 맞다고 믿으며 자기강화를 하는 경우가 많다. 어느 순간부터 타성에 젖어 무엇이 올바른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고 자신이 하는 행동에 정당화가 더 중요해지는 순간이 온다. 저절로 내가 맞고 남들은 틀리다는 아집에 빠지게 된다.
이를 위해서 항상 나 자신과의 대화가 중요하다. 누구도 이를 지적하고 조절할 수 없다. 오로지 나만이 할 수 있다. 어떤 사고가 나에게 주입된 것이 중요하지 않다. 아무것도 모르니 주입되는 것이 맞다. 그런 과정에 거쳐 나만의 고유한 것을 갖게 되는가가 핵심이다. 이 단계까지 가는 길은 지나한 여정이고 쉽게 결론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이런 숙성의 시간을 거친 사람은 자신만의 원칙과 주관이 생긴다. 이를 근거로 세계를 바라보고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게 된다.
여기서 또한 남들이 나에게 바라는 외재적 가치가 있고, 내가 바라는 내재적 가치가 있다. 무엇이 옳다의 여부는 아니다. 나보다 경험과 지식이 많은 사람들의 충고는 잘 못된 것은 아니다. 나도 아는 게 없으니 그들의 충고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중요한 지점은 그들은 타자일 뿐이다. 그 모든 것을 실행하고 책임지는 것은 나 자신이다. 누구도 날 대신할 수 없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걸 할 때 공허한 이유다. 나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하지 않을 때 불만이 생기는 이유기도 하다.
내면의 마음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의미가 그것이다. 고민을 하게 된다. 고민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고 싶다는 뜻이다. 하고 싶지 않은데 고민할 필요가 없다. 어떤 제안이 왔을 때 단칼에 거절할 수 있지만 생각해보겠다는 답을 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고민을 하게 된다. 여러가지 다양한 이유와 플랜에 대해 고려하게 되지만 역시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에 갖는 고민이다. 결정장애자일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자신 내면의 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내면에서 하고 싶으니 고민하는 것이다. 하기 싫은데 고민이라면 거절을 차마 못해서 나오는 고민일 뿐이다. 이런 시행착오가 중요하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도 없고 즉석에서 어떤 답을 찾는 사람도 드물다. 이런 과정을 여러번 경험하면서 내면의 소리를 듣는데 익숙해진다. '내가 왜 고민하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 몇 번의 경험을 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성장한다. 고민 끝에 악수를 두는 경우도 많다. 그건 인간이 갖고 있는 불완전한 속성때문일 뿐이다.
과정은 내가 할 수 있다. 여러가지 노력으로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다. 결과마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결과는 나혼자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다양한 변수가 수없이 존재한다. 내가 최선을 다했다고 최선의 결과가 나오는 것은 절대 아니다. 평소보다 노력을 덜 했는데도 최선의 결과가 나올수 있다. 이처럼 결과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과정을 중시하고 노력할 때 결과가 좋든, 나쁘든 내가 성장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결과가 안 좋아도 된다.
내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과정을 직접 노력했기에 다시 도전하면 된다. 실수하거나 실패한 이유를 다시 곰곰이 생각하며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도록 하면 된다. 또 다시 결과가 그다지 좋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내가 개선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시간이 갈수록 내가 원하는 결과에 근접하게 된다. 나도 모르게 이전과는 달라진 나를 발견하게 된다. 상당한 축적의 시간이 쌓였을 때 가능하다. 누구도 대신할 수없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다. 내가 나를 만나야 하는 이유다.
남들과 아무리 차별성을 만들려고 노력해도 무가치하다. 나라는 사람이 빠진 것에는 그 어떤 것도 의미가 없다. <내 안의 나와 나누는 대화>에서는 나라는 사람을 만나는 다양한 설명을 해준다. 최근에 생산자가 되라는 말을 하고, 포식자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많이 들을 수 있다. 이런 것들이 무척 좋은 주장이고 설명이다. 가슴 가득히 들어오는 무엇인가 있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 공허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럴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에 대한 답을 먼저 찾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내 삶의 만족도가 높은 사람에게 포식자나 생산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자신을 위해 삶을 살아갈 때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차이를 알지 못하면 노력한다고 되는 것은 그다지 없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출발하는 것이지, 남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다. 남이 주입한 사고에 내가 감화받아 움직일 수 있어도 오래 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다. 쓰고보니 책과는 상관없는 내 생각만 쓴 리뷰네요.
핑크팬더의 다시 돌아보기 : 내 생각을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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