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한다

과거에도 사실 나는 누구인지에 대한 생각은 거의 하지 못했다. 이 부분은 전통적으로 철학의 문제였다. 철학은 가진 자의 논리고 생각이었다. 하루 하루 살기 바쁜 사람들에게 나라는 존재에 대한 물음은 전혀 할 수 없었다. 그럴만한 여유 자체가 없는 삶이었다. 거기에 나란 존재를 깨닫는다고 달라질 것은 전혀 없었다. 신분제가 있던 시대니 별 의미가 없다고 할 수도 있다. 자신의 존재론적인 질문과 해답은 현대에 들어와서 점차적으로 더욱 비중이 늘어났다.
과거에 비해 개인의 자유와 활동폭이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높아졌다. 그만큼 자신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할 수 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개인의 자유가 높아졌다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한다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예전에 비해서는 훨씬 더 자신에 대해 생각을 하는 것은 맞지만 대부분 자신이 살아가는 삶대로 살아갈 뿐이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워낙 빠르게 돌아가는 속도에 따라가기도 버거운 인생이다. 존재는 커녕이라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차라리 과거에는 내가 이런 인생이라는 사실을 체념하고 살 수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나보다 더 뛰어나고 훌륭한 사람이 도처에 가득하다. 그들과 경쟁은 버겁기만 하다. 내 인생이 비루하다고 느끼는데 노력을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런 상황이 오히려 더 나를 비참하게 만든다. 누군가 나에게 '노력'이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나도 노력을 한다. 그들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나도 분명히 내 입장에서는 노력을 한다. 그럼에도 잘 되지 않는 걸 어쩌란 말인가.
이런 상황에서 나란 존재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면 부정적인 감정으로 휩쌓일 때가 많다.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위로와 위안을 준다고 하지만 그 마저도 받아들이는게 편하지 않다. 진정한 감정입이나 동감이 아닌 걸로 느껴진다. 어쩔 때는 자신들의 잘남을 빛내기 위해서 나를 이용한다는 생각마저 든다. 네 덕분에 내가 빛난다는 감정을 숨기고 옆에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상황에서 나란 존재를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초라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 세상에 살아가는 수많은 존재 중에 나는 딱 한 명이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느 누구도 나를 인식하지 못하고 하찮게 여길지라도 내가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힘들다. 그렇다. 나란 존재가 세상에서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내가 아니면 누가 나를 위로해주고 위안해 주며 잘났다고 칭찬하겠는가. 내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나라도 나 자신에 대해 믿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라는 존재를 확실히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나다.
행복이라는 감정에 대해 우리는 엄청나게 찾아다닌다. 다양한 상황에서 행복을 맛볼 수 있다. 성공해야만 행복한 것이 아니다. 누구나 다 사회적인 관점에서 성공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는 사회적으로 볼 때는 지극히 평범하다 못해 인지하기도 힘든 존재일 수 있다. 그렇다해도 내가 행복하게 살아간다면 그것만으로도 남들에게 부러움을 살 수 있다. 딱히 내세울 것이 없어 보이지만 행복하게 살아간다면 그것만으로도 타인들에게 주목받을 수 있다.
행복이란 거창하거나 대단한 것이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행복이 연속될 때 오히려 더 행복한 삶이다. 큰 행복을 맛본다 하더라도 기껏해야 하루도 못간다. 하루는커녕 몇 시간도 행복한 감정이 지속되지 못한다. 사실 이 모든 것은 나로부터 출발한다. 성공하겠다는 결심을 한 것도 나다. 성공하지 않아도 잘 살면 된다고 결정한 것도 나다. 그 모든 것은 나로부터다. 내가 중심에 있지 않는다면 모든 것은 다 소용이 없다. 그게 중요하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는 심리 책이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설명하고 소개한다. 어떤 것은 정 반대의 이야기를 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나란 존재가 단 하나로 규정된다면 누구나 다 반박하지 않을까. 상황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인간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역시나 핵심은 나란 존재다. 상처 받기도 하지만 상처 주기도 한다. 불안감에 사로잡히기도 하지만 자신감에 넘치기도 한다. 이런 모습이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외부에서 바라보는 내가 있고, 내가 바라보는 내가 있다. 나는 한 명이지만 서로 달리 보이면서 다른 존재로 보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역시나 남들이 보는 내가 아닌 내가 알고 있고 판단하고 인식하는 나다. 너무 외부에서 바라보는 나를 의식하니 제대로 된 중심이 서질 못한다. 어떻게 볼 때 현대인의 가장 큰 어려움이 아닐까한다. 자꾸 외부에서 바라보는 나에게 집중한다. 열심히 살고 노력하는데도 공허한 이유다. 이런 걸 인정받기 위해서 성공이라는 잣대에 매몰된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외부에서 바라보는 나를 멋지게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걸 해야 한다. 저런 걸 해야 한다. 그래야 인정받는다. 현대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수많은 이야기가 오고간다. 그 모든 것에서 진정한 나란 존재는 삭제되었다. 문제는 그 부분이 금방 알아차리기도 힘들고 어렵다.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나야만 그 사실을 깨닫게 되니 이런 내 표현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어차피 정답이 없는 인생이다. 그렇다면 나라는 존재에 대해 스스로 존중하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삶이지 않을까.
핑크팬더의 다시 돌아보기 : 나는 나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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