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게 너무 많아도 좋아 - 성덕


내 주변에는 덕후가 좀 있다. 일본말로 오따꾸가 한국에서 덕후로 변경되었다. 덕후라는 건 특정분야에서 집요하게 파고 들어간다는 뜻이다. 아마도 아마추어와 프로의 중간 정도를 일컸지 않을까. 덕후 중에는 어지간한 프로보다 훨씬 더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는 사람도 많다. 프로란 기본적으로 자신이 하는 일에 돈을 받는다는 걸 의미한다. 우리가 많은 걸 바라지 않고 돈 받았으니 그정도의 프로정신을 보여달라고 하는 걸 보면 말이다. 덕후가 프로와 다른 점은 스스로 익히고 배운다.
프로는 기본부터 차근차근 가르침을 받고 시행착오에서 이를 지켜봐주면서 정정해주는 프로가 있다. 덕후는 그런 것이 없다. 본인이 즐거워 시작한 것이라 딱히 그런 거 없이 모든 걸 본인이 A부터 Z까지 전부 한다. 뭐가 중요한지도 모르고 맨바닥에서 다한다. 이러다보니 다소 서투르고 다듬어지지 않은 듯하지만 어지간한 프로보다 더 열정적으로 배우고 익힌다. 비록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할지라도 어떤 순간에는 프로들이 오히려 덕후에게 머리를 숙이는 경우도 있다.
덕후가 자신이 하는 일을 즐기면서 집요하고 파고 들어가니 오히려 어지간한 프로보다 더 많은 걸 시간이 지난 후에 알게 된다. 이렇게 덕후 중에 자신이 덕질을 해서 성공하는 경우를 성덕이라고 부른다. 성공한 덕후라는 뜻이다. 갈수록 이런 덕후들이 더욱 각광을 받고 전문가보다 더 전문가 대접을 받는 시기가 올 것이라고 본다. 그런 성덕 중 한 명이 이 책 <좋아하는 게 너무 많아도 좋아> 작가인 조영주다. 추리 소설 <붉은 소파>로 세계문학상까지 받은 사람에게 덕후라니.
작가는 스스로 고백한다. 책 읽는 걸 워낙 좋아하다 작가까지 되었다고 말이다. 그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한 번 필 받으면 모든 걸 포기하고 그것만 하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책도 얼마나 많이 읽는지 가끔 작가의 블로그에서 본인이 무얼 읽고 있다고 올리는 걸 보면 하루에 몇 권도 가뿐하게 올리는 걸 본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나처럼 어정쩡하게 읽는 사람이 독서 책을 내는데 엄청나게 무지막지하게 읽는 사람은 오히려 관련 책을 내지 않는 듯하다.
조영주 작가를 직접 만난 적이 있다. 이 책에서도 언급되는 카페 홈즈까지 찾아 가 만났다. 본인이 다소 낯을 가린다고 했는데 나도 그런 편이지만 그 날 서로 저녁 늦게까지 식사까지 하고 헤어졌다. 책에 나온 내용은 본인이 블로그에 쓴 것도 있고 예스24에 '조영주의 성공한 덕후'와 '조영주의 적당히 산다'에 올린 칼럼을 모은 책이다.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지만 다소 심각한 것도 있다. 거기에 자신의 내부를 솔직히 고백한 내용까지 함께 골고루 다루고 있다.
대체로 에세이를 지금까지 읽을 때 책을 쓴 당사자를 아는 경우가 드물었다. 철저하게 객관적으로 쓴 글을 읽으며 나 혼자 상상하고 '이런 사람이겠구나'했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이미 알고 있던 지인(이라 쓰기에는 좀 애매하지만)의 이야기라 더 즐겁게 읽었다. 그렇다고 놀라거나 신기해 하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소설을 읽은 후 작가를 만난 사이다. 개인을 알게 된 후에 소설을 읽거나 작가로 만난 것이 아니다. 그만큼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읽었다.
무엇보다 좋아한다는 표현을 한 것처럼 자신이 빠지면 완전히 몰입하는 스타일인 듯하다. 일본 만화 등을 보면서 자발적으로 일본어 공부를 했다고 한다. 일본어를 어느 정도 할 단계까지 갔다고 하니 덕후도 이런 덕후가 없다. 여기에 소설가로 데뷔까지 할 정도면 꽤 대단한 인물이 된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도 소설가라는 자각은 전혀 하지 않고 좋아하는 작가가 있으면 팬처럼 찾아간다. 팬 싸인회도 부르지도 않았는데 직접 싸인을 받아 올 정도다.
재미있게도 그렇게 순수하게 팬으로 다가갔는데 본인도 소설가로 데뷔를 하니 이제는 같은 소설가로 만나 이야기를 하니 성공한 덕후라고 사람들이 말했단다. 책 시작하자마자 왕따 이야기를 해준다. 왕따였고 우울증도 겪었는데도 이 모든 걸 글로 풀어냈다는 이야기는 본인 표현처럼 덕후가 맞는 듯하다. 여기에 바리스타를 배우고 커피 숍에서 알바를 하며 원두커피를 내려 손님에게 준다. 사회 활동을 위해 기자로 잠입한다. 표현이 재미있다. 기자로 취직한 것이 아니다.
기자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 취직이 아닌 잠입한다. 운 좋게도 당시는 취직이 그다지 어렵지 않아 6개월 정도 근무했다고 한다. 이런 작가의 투철한 직업 정신이라고 해야 하겠지만 이마저도 덕후다운 행동으로 느껴진다. 난 아무리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어도 집요하지 못하다. 대신에 포기하지 않고 시간이 걸려도 계속 한다는 정도다. 덕후가 성공한다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자신이 하고 싶어 한다. 거기에 좋아서 한다면 더할나위 없을 듯하다.
2년 전에 만났을 때 소설을 쓴다고 했고, 그 후로도 어떤 소설을 거의 다 썼다는 글을 블로그에 올린 걸 봤다. 아직까지 지난 2년 동안 딱히 새로운 소설이 나오지 않았다. 단편 소설은 나왔는데 그만큼 엄청난 퇴고를 거듭하는 스타일이다. 대부분 작가들이 이렇게 쓴다고 한다. 어떤 작가는 다 쓴 후에 서랍 속에 넣고 몇 달 후에 다시 본다고 하니. 이 책은 그저 편하게 자신의 일상과 만난 사람들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 다음에는 소설로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증정 받아 읽었습니다.
까칠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예쁜 책을 만들려고 글자가 좀 작다
친절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성공한 덕후가 된 작가 이야기.
함께 읽을 책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하기 싫은 일을 하는 힘 - 받아들이기

배당주로 월 500만 원 따박따박 받는 법

20년 차 신 부장의 경제지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