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 아무나가 되기 위해


확실히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뭔가 다른 듯하다. 책을 읽자마자 엄청난 흥미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총 9개의 챕터로 구성된 책이다. 순서대로 구성한 것인지 각자 챕터를 새롭게 구성해서 편집한 것인지 모르겠다. 어차피 책 구성이 각 챕터끼리 연결이 되지는 않기에 말이다. 프롤로그도 없고 단도직입적으로 책이 시작된다. 그것도 추방이라는 꽤 긴장되고 집중을 불러일이키는 단어로 말이다. 더구나 중국이라는 국가에 가서 공안에 의해 쫓겨나는 에피소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런 일이 생겼는지 궁금해서 최소한 해당 챕터의 초반은 일단 책을 집어들면 놓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나름 소설가가 많지만 현재 한국에서 가장 인지도 있는 작가 중 한 명이 '김영하'가 아닐까한다. 워낙에 소설로도 유명했지만 그 외에 전방위적인 활동을 한 덕분이다. 라디오는 물론이고 팟캐스트도 했다. 심지어 가장 최근에는 예능 프로에 나갔기에 전국적인 인기까지 얻게 되었다. 여기에 글마저 잘 쓰니 어지간하면 인기를 끌 수밖에 없다.
내 생각에 한국에서 인지도를 갖고 있으면서 꾸준하게 소설과 에세이를 쓰는 두 명의 작가가 있다. 한 명은 외국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이고 한 명은 국내 저자인 김영하다. 둘 다 참 열일하며 거의 매년마다 소설이든 에세이든 펴내고 있다. 차이라고 하면 하루키가 훨씬 더 분량이 많다는 점이다. 김영하는 최근 펴내는 책의 트렌드가 얇다. 스스로도 그런 점을 이야기한 걸로 기억한다. 최근 트렌드에는 맞는 양식으로 보인다. 이것도 솔직히 그다지 쉬운건 아니다.
여전히 한국에서는 어느 정도 분량이 있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느끼이 있다. 내 편견인지는 몰라도 그렇다. 그래도 250페이지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할 수 있는데 김영하의 최근 소설이나 에세이는 200페이지가 살짝 넘는다. 본인 스스로도 그런 트렌드를 잘 파악해서 감각에 맞는 책을 쓰는 것이 아닐까한다. 다시 책으로 들어와서 소설가답게 에세이인데도 각 챕터마다 동일한 구성으로 썼다. 우선 독자의 관심을 끌만한 소재로 시작하며 무슨 이야기를 할지 궁금하게 만든다.
그 후에 초반에 이야기한 소재와는 연관이 있으면서도 없다고 할 수 있는 내용을 전개한다. 그런 후에 챕터 후반부에 가서 또 다시 초반 내용으로 돌아가 결말을 맺는 형식이다. 에세이 자체도 부담없이 쓴 게 아니라 상당히 공을 들여 쓴 느낌이다. 그렇기에 이런 형식으로 쓴 것이 아닐까한다. 그렇지 않다면 아닌거고. 사실 책을 읽기 전에는 작가가 워낙 최근에 예능 프로를 통해 여행을 많이 다녀 이를 근거로 여행에 대한 에세이를 쓴 것이 아닐까하는 다소 고까운 시선이기도 했다.
<여행의 이유>를 읽으며 내 오해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원래부터 작가가 여행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매 년마다 해외 여행을 꾸준히 간 것은 물론이고 아예 몇 년 동안 외국에 정착해 살았다는 것도 알았다. 본인도 설명했지만 직업 자체가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 전 세계 어디서든 작업이 가능하다. 그것은 바로 작가라는 직업은 본인 머릿속에서 꺼내면 된다. 장소와 지역과 상황에 따라 약간 다른 구성이나 내용이 나올 수는 있어도 작가의 머리는 동일하다.
이런 부분은 하루키 소설을 읽었을 때도 참 부럽다는 생각을 했던 점이다. 전 세계 어디를 가서도 작업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첫 챕터에서도 결국에는 그 내용이다. 중국에 도착하자마자 비자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집중적으로 글을 쓸 수 없어 택한 행동이다. 1~2달 정도 누구와도 연락되지 않는 곳에서 집중적으로 글을 쓰려 했다. 그게 꼭 중국일 필요는 없다. 내 마음이 가는 곳이 중요하다. 같은 환경에서 되풀이 되는 작업을 하려면 자꾸 미루게 되고 게을러 진다.
그런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변화가 필요해 여행을 한다. 의외로 한국에서도 차라리 포기하고 전념했더니 스스로 한국인지 외국인지 모르고 잘 썼다고 말한다. 사람마다 약간 글 쓰는 루틴이 있다. 커피숍에서 쓰는 사람도 있고, 새벽에 쓰는 사람도 있고, 야간에 쓰는 사람도 있다. 내 경우는 집에서 쓰기는 하는데 주로 낮에 쓰긴 했다. 시간 날 때 쓰지만 그래도 2~3시간 확보될 때만 쓰긴 했다. 최근에는 다소 변경하려 하긴 하지만. 여행이 갖는 장점은 아무래도 익숙함이 아닌 낯섬이다.
작가도 그런 면에서 '아무도'라는 개념을 꺼낸다. 여행을 갔을 때 나는 누군가라는 개념보다는 아무도 라는 개념이 된다. 나 자신도 여행을 가면 일상과는 다른 행동패턴을 하게 된다. 일상은 반복되고 흐트러지면 이를 다시 수습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여행은 그렇지 않다. 그곳에서 나에게 일상도 없고 익숙함도 없고 반복된 루틴도 없다. 그자 잠시 머물면 될 뿐이다. 그런 점이 바로 여행의 묘미다. 과거에 높은 분들이 산 근처에 가서 하인에게 산을 대신 등산시켰다는 여행도 흥미로웠다. 직접 체험은 아니여도 객관적인 관조는 할 수 있을테니.
몇 몇 챕터는 흥미롭고 재미있지만 또 몇 몇은 재미가 덜했다. 여행에 대한 깊은 사색은 아니지만 작가의 가벼운 에피소드를 근거로 좀 더 확장해서 다소 생각할꺼리를 던져준다. 현대인은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여행을 한다. 일상을 탈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여행을 택한다고 생각한다. 작가가 쓴 여러 여행에 대한 후기와 이유에 대해 읽으면서 부럽기도 했다. 어느 정도 성공한 작가만이 갖고 있는 자유로움과 여유라고 할까. 아울러 여행 책이지만 글쓰기 작법에 대한 이야기는 나도 글쓰는 사람으로 꽤 도움이 되었다.
까칠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몇 몇 챕터는 재미가 다소 덜
친절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여행에 대한 다양한 요모조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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