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이 바람 될 때 - 마지막


죽어도 피할 수 없는 것은 죽음이다. 어느 누구도 죽는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죽음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우리는 죽는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이걸 인지하며 살아가지 못한다. 억지로 피하는 것도 아니다. 분명히 영원히 살 수 없지만 영원히 살 수 있을 것처럼 살아간다. 내일 당장 죽을 것처럼 살라는 말도 한다. 이럴 때 무엇을 할 지 고민하고 그걸 하라고 말한다. 솔직히 그런 말은 좀 멍청하다. 내일 당장 죽는다고 달라질 것이 있는가.

더구나 내일 당장 죽는다는 사실이 진짜가 아닌데 우리가 뭘 할 수 있겠는가. 죽음은 의식적으로 피하는 알 수 없는 무엇인가이기도 하다. 이 부분은 아직 내가 나이가 젊어 그런지도 모르겠다. 나이를 먹을수록 죽음에 대한 태도는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예측한다. 나이가 드신 분들은 확실히 죽음에 대해 받아들이는 태도가 다르다는 걸 이야기하며 느낀다. 나이를 먹으며 죽음을 점차적으로 간접, 직접적으로 목격하며 살짝 무감각해지기도 한다.

어릴 때 느꼈던 죽음은 너무나 무섭고 공포스러웠다. 사람이 움직임이 없고 정지해 있단 사실은 생각조차 해 본적이 없었다. 분명히 가만히 있어도 살아있는 사람이 숨을 쉬며 느껴지는 것과 죽은 사람이 텅 빈것과 같은 몸덩어리가 있는 느낌은 비교조차 불가능하다. 이 책인 <숨결이 바람 될 때>는 의사였던 저자가 환자가 되면서 느꼈던 감정을 알려주는 책이다. 무엇보다 문학을 전공하다 의사가 된 저자답게 글이 매끄럽다.

자신의 인생을 생각할 때 글을 쓰는 것보다는 사람을 직접 치료하고 연구하는데 더 커다란 즐거움을 느낀다는 걸 깨닫고 의사가 된다. 뛰어난 의술로 레지던트가 끝날 때 쯔음에 유명 대학에서 - 우리도 알고 있는 - 교수 제안이 온다. 단순한 교수가 아닌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는 역할까지 제안하고 종신교수도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만큼 수많은 시간동안 수술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고 조사하며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며 시간마저 단축시킨 노력의 댓가였다.

신경 외과 의사답게 여러 죽음을 목격한다. 그들에게 의사로써 최대한 친절하게 설명한다. 괜찮을 것이라 독려하고 희망을 주기도 하지만 냉정하게 현실을 전달하기도 한다. 막연한 설명이 아닌 숫자로 설명하며 좀 더 확실한 이야기를 전달하던 의사였다. 수술을 받아도 사망한 환자를 볼 때는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대부분 좋은 결과를 냈던 의사였다. 그런 폴 카라니티는 암에 걸린다. 점점 살이 빠지고 이상징후가 보여 검사를 받은 결과였다.
이 과정에서 죽음에 대해 의사로 전달하는 사람에서 전달받는 환자로 역할이 변경되며 겪는 내용이 있다. 자신이 의사기에 주도적으로 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담당의사에게 일임한다. 마지막에 죽음이 다가왔을 때 연명하기보다는 안락을 원한다. 1차 약물, 2차 화학요법 등 치료를 받은 후에 암이 갑자기 더 진전되며 포기한다. 약물 치료후 증상이 완치되어 다시 복귀를 했으나 재발되었다. 36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생긴 일이었다.

마지막에 안락을 택하는데 나도 늘 그렇게 할 것이라 이야기한다. 마지막 순간에 더 살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담담하게 내 상황을 인정하고 남은 여생을 택할 생각이다. 죽음을 인정하고 삶을 포기하겠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좀 더 삶을 연장하려 고통을 택하기보다는 현재 삶을 더 살아가는게 좋다는 입장이다. 막상 그 순간이 왔을 때 어떤 선택을 할지 미지수지만 평소에 이런 생각을 해 놓는 것이 차라리 좋다고  생각한다.

다행히도 지금까지 크게 아파 본 적이 없다. 맹장 수술로 입원한 걸 제외하면 말이다. 그것 말고도 식구 중에도 아퍼 오래도록 케어를 한 적이 없다. 이건 무척이나 축복이라 생각한다. 아버지가 뇌수술로 케어를 한 적이 있지만 그건 투병이 아닌 수술후 완치과정이라 그다지 힘들진 않았다. (아니면, 나만 그렇게 생각한 못 난 아들이던가) 더구나 친한 친구나 지인 중에 투병 등으로 먼저 간 사람이 없어 이것도 난 축복이라 생각하며 살고 있다.

책에서 나온 삼 개월이 남을 때, 1년이 남을 때, 10년이 남을 때. 어떻게 살아갈까. 모든 사람은 죽지만 언제 죽는지 모르니 평생 살것처럼 행동한다. 삼 개월 후에 죽는다는 걸 안다면 어떻게 살아갈까. 그게 1년과 10년이라면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일단, 10년이라면 그다지 생각하진 않을 듯하다. 10년이나 20년이나 느낌은 차이가 없다. 그저 살다 언제가 죽는 것과 차이는 없게 느껴진다. 1년도 다소 애매해서 그다지 신경쓸 것 같지가 않다.

그나마 삼 개월 남았다고 하면 좀 더 다르게 와 닿을 듯하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까. 기본적으로 지금과 같은 삶을 계속 살아갈 것이라는 것이 이런 질문에 예전에 답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얼마 남지 않은 삶이라고 딱히 무엇인가 다르게 행동할 필요가 있을까한다. 지금처럼 살아가며 혹시나 마지막 날 안부나 전하지 않을까. 블로그를 운영하니 블로그에 '그동안 고마웠습니다.'정도는 반드시 꼭 할 것이다.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내 블로그를 보고 공감이나 덧글 달아준 분들에게 감사인사는 해야겠지.

성격상 마지막이라고 울면서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오히려 유머를 섞어가며 농담을 할듯하다. 제일 재미있는 자기비하를 하며. 신체능력의 상실과 인지능력의 상실 중에 어떤 걸 슬퍼할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신체능력보다는 인지능력의 상실을 더 슬퍼할 듯하다. 여하튼 인간은 뇌가 모든 걸 주관하니 말이다. 가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것은 삶을 환기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래도 난 지금까지 그러하듯이 평소처럼 살아갈 생각이다. 다만 그럴 수 있는 육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이 허락했으면 할 뿐이다. 모든 걸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은 너무 슬프고 생각조차 싫다.

증정받아 읽었습니다.

까칠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에필로그 등이 넘 길다.
친절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삶은 계속 된다.

함께 읽을 책
https://blog.naver.com/ljb1202/220174136338
죽음학 수업 - 먹먹함

https://blog.naver.com/ljb1202/130171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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