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죽을 것인가 - 나답게


아직까지 죽음은 두렵다. 두렵다는 표현보다는 아무 것도 모르겠다. 솔직히 전혀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나이를 먹어 큰 병에 걸리면 굳이 연명하기 위한 노력을 하며 치료를 받는 것보다는 그 병을 갖고 살겠다고. 향후 의료기술이 발달해 항암치료같은 걸 안 받아도 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더 살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남은 생을 준비하며 죽음을 맞이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그런 시기가 최소한 70살은 넘고 80살은 되었을 때지만.

나이를 먹어가며 죽음을 나도 모르게 조금씩 느끼게 된다. 어릴 때 죽음이란 나와 상관없는 사건이었다면 점점 주변 사람들의 죽음을 듣거나 목격하며 피부로 와 닿게 된다. 여전히 그때뿐이고 잠시후면 금방 잊고 현실을 살아갈 뿐이다. 죽음은 나와는 하등 상관없는 삶을 산다. 가족과 더 가깝게  살아가고 주변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라는 표현은 참 좋은 말이지만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고 앞으로도 살아갈 나날이 많다고 믿고 있는 상황에서는 그때뿐이다.

올 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나에게는 커다란 사건은 솔직히 아니었다.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었다. 또한 할머니는 내 인생에서 나도 모르게 잊혀졌었다. 워낙 오랜 시간 요양원에 있으셨기에 가는 것도 점차 뜸해졌다. 어느 순간부터 나를 기억하지 못하시고 나를 보며 다른 사람을 이야기할 때 내 마음은 그랬던 것이 아닐까. 할머니 장례를 치루고 화장을 하며 처음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사실 우리 식구들은 전부 우울해하거나 울지는 않았다. 오히려 떠들정도였다. 

그래도 할머니 발인할 때 찬송을 부르며 걸으라고 하니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화장 후 그곳에서 화장된 가루를 뿌리는 데 무척 따뜻했다. 그 촉각은 무척 낯설었다. 당연히 따뜻할텐데 아마도 차가울 것이라 생각했나보다. 현실과 생각은 조금 다른가보다. 사실 어느 순간 문득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기억이 떠오른다. 죽음과 관련된 꽤 다양한 책을 의도하지 않았지만 읽었다. 어떤 책을 읽어도 단지 머리로만 받아들일 뿐 가슴으로 느끼지는 못한다. 다행히도 내 주변에 아주 가까운 사람이 먼저 간 적은 없다.

거의 유일하게 아버지가 10년 전에 머리에 혹이 생겨 수술을 받을 때가 근접했다. 모든 가족이 별 의심도 고민도 없이 수술해야한다는 의사 말에 그렇게 하자고 했다. 지금와서보니 참으로 생각없이 쉽게 결정했다고 본다. 다른 곳도 아니고 머리라는 그 어려운 곳을 수술하는데 더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니 말이다. 오래도록 뇌종양에 있던 걸 조금씩 증상이 있다 찾아왔기에 내린 결정이긴 했다. 수술 후 응급실에 있는 아버지와 그 후에 완치되는 과정에서 힘들어하는 걸 보며 여러 사람이 힘들다는 걸 깨달았다.

아쉽게도 그 후에 아버지는 왼쪽 발가락이 마비가 되었다. 의사는 좋아질 수도 있다고 했지만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그 전까지 함께 일요일에 20~30대 친구들과 축구를 했는데 이제는 도저히 못한다. 마지막으로 축구를 다시 해 보는 게 꿈이라고 하셨다. 여전히 등산도 하시고 출퇴근시에 자전거를 타신다. 그저 제대로 걷지 못하고 절뚝거리며 걷는다. 계속 움직여줘야 하기에 활발하게 움직이셔야 한다는 점이 아버지 성격과 다행히 잘 맞아 열심히 돌아다니신다.

어느 덧 부모님의 연세가 많아졌다. 여전히 정정하시고 내가 볼 때 최소 10년은 더 거뜬하실 것이라고 믿지만 - 그렇게 보이시기에 - 해가 갈수록 예전과 달리 확실히 나이가 드셨다는 걸 눈으로 느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것은 내 자신뿐만 아니라 내 주변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똑같다. 양가 부모님이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식구들에게도 현실적으로 점점 어려움이 가중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뜻이다. 그건 꼭 금전적뿐만 아니라 심정적은 물론이고 어떤 식으로 케어할 것인지 문제도 대두된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크게 두 부분을 나뉜다. 전반부는 노인 분들이 죽음을 대하는 자세와 어떤 식으로 이를 풀어낼 것인지 부분이다. 후반부는 불치병에 걸린 사람이 남은 생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 여부다. 최종적으로 저자가 주장하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내용이다. 죽음과 관련된 책을 독서모임에서 택한 적이 있었다. 다들 이런 책인지 몰랐다고 했다. <죽음학 수업>이다. 이 책은 죽은 사람들 주변에 남은 사람들이야기다.

뜻하지 않게 죽은 지인이나 식구가 자꾸 떠오르며 트라우마에 빠진 내용을 치유하는 내용이다. 워낙 그 내용이 처절하고 끔찍한 것들도 있어 너무 가슴이 아펐다고했다. 이처럼 죽음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주변 사람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이 책은 죽음을 대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어떤 식으로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다. 의료행의로 생명을 연장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닌 주체적으로 자신이 남은 생을 자발적으로 행복하게 맞이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의학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이 더 늘어났다고 알지만 그보다는 청결과 수질덕분이다. 과거에 깨끗하지 못한 물을 마신 것과 청결치 못한 생활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질병에 쉽게 노출되었다. 두 부분이 개선되며 수명이 늘었다. 여기에 페니실린을 통한 항생제덕분에 의료기술은 발달할 수 있었다. 죽을뻔한 생명을 구한 것도 많지만 그보다는 인간이 갖고 있는 수명만큼 뜻하지 않은 사고가 아닌 다음에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의사분들의 노력은 분명히 귀하고 인간에게는 축복이 되었다.

아직까지 암을 비롯한 다수의 질병은 정복되지 않았다. 언젠가 인간은 죽는다. 젊을 때는 큰 질병에 걸려도 체력이 받쳐주기에 금방 회복할 수 있지만 나이를 먹으면 쉽지 않다. 이 책을 읽어보니 몰랐는데 연세가 드신 분들이 그렇게 많이 제대로 걷지 못해 넘어지고 쓰러져 큰 문제가 생기는지 몰랐다.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알기는 했는데 이 책 저자가 외과라 그런 것인지 몰라도 엄청 많다. 큰 질병에 걸린 것은 아니지만 노화되며 점점 신체기능이 저하되며 내 의지와 상관없이 넘어지는 것과 같은 일로 인해 외부적인 충격이 2차, 3차 고통을 겪게 만든다.

가족이 함께 돌보면 가장 좋다.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가족들이 지친다. 생활을 해야 하고 일도 해야 하는데 계속 부모님 옆에 있을 수 없다. 이런 사정이니 다들 요양원을 택한다. 요양원은 분명히 환자를 위한 곳이지만 갈수록 규격화되고 체계화되며 정작 환자가 아닌 그 곳에 있는 사람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 각자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있고 생활패턴이 있는데 이걸 개별적으로 케어해주지 못한다. 요양원에 들어간 대부분 노인분들이 싫어한다. 내 생활을 할 수 있는 집을 그리워하지만 그곳에서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어 버린다. 미국에서는 현재 홈 호스피스 제도를 통해 집에서 평소처럼 거주하며 케어받기도 한다.

 내가 70이 넘었을 때 큰 병이 걸리면 굳이 연명하지 않으려고 한 이유는 병원에서 치료받으며 내 삶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막상 그때가면 더 살고싶다며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써는 그런 생각을 미리 해 놓는 것이 좋지 않을까.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의사는 몇 년 정도를 더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수술같은 의료처방을 권하고 환자들은 10년 이상을 더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인다고. 이 간극이 바로 핵심이 아닐까 싶었다.

이 책 저자는 스토리텔링에 무척 능하다. 의사가 이 정도 스토리텔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한다는 점이 놀라울 정도다. 소설을 읽는 것처럼 자세히 묘사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아버지 사례를 들어 설명하는데 피부로 팍팍 와 닿는다.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내가 생각했던 죽음에 대한 마지막 삶의 태도는 변하지 않을 듯하다. 꼭 내 의지로 정하고 실천할 수 없고 식구들을 비롯한 다양한 요소가 포함되며 변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면 시야가 좁아지며 주변을 돌아보고 살 날이 많아진다고 생각되면 다시 시야가 넓어지며 더 진취적인 일을 하려 노력한다. 책에 나온 이야기나 실제 사례를 읽을 때 100% 맞는 말같다. 우리는 내일 죽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기에 오늘을 이렇게 살고 원대한 계획을 갖는다. 어차피 언제 죽을지는 모른다. 그 때는 누구도 모르지만 그 때가 왔을 때 여전히 나인 상태로 나답게 죽고 싶다. 내가 세상에 살았다는 증거는 의외로 많이 있어 다행이다. 

까칠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죽음을 피하진 말자.
친절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누구나 언젠간 죽는다.

함께 읽을 책
http://blog.naver.com/ljb1202/199059625
죽음이란 무엇인가 -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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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학 수업 - 먹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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