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다 - 김영하


작가는 작품으로 주장을 펼치는 게 최선이다. 작품이 세상에 선 보이는 기간과 문제가 발생한 시간과의 괴리감이 문제지만 그만큼 보다 숙성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반드시 사회 문제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작품으로 주장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그 편이 보다 맞다. 과거에 어느 정도 파급효과가 있었지만 이제 시대가 흘러 딱히 영향력이 크진 않다. 그렇다고 꼭 현실참여적인 작품을 선보이는 것도 아니라 약간 애매할 수도 있다.

김영하 작가는 어느 정도 인지도를 갖고 있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내가 알고 있다고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닐 정도의 인지도가 아닐까. 소설가인 김영하는 다른 소설가와 달리 상당히 여러 곳에 참여를 했다. 강연도 하고 팟빵도 하고 방송 진행도 하는 등. 지금까지 다양한 곳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작품이 아닌 자신의 목소리로 사람들에게 생각을 전달했다. 꽤 오랜 기간동안 말한 내용을 책 한 편으로 엮었다. 이게 좋은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그동안 여러 곳에서 했던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다. <힐링캠프>에서 강연한 내용도 화제였고 TED나 세바시도 꽤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까지 화제가 되었다는 것만 알았을 뿐 직접 보고 들은 적은 없다. 즉시성이 중요한 것은 아닌데 타이밍을 놓치면 굳이 보지 않아 몰랐는데 이번 <말하다>에는 당시에 했던 모든 내용이 편집되지 않은 상태로 저자가 직접 발췌해서 올렸으니 보다 원문(?)에 충실하다. 그 내용 중 몇몇 내용만 보자면.

제가 대학교를 다닐 때는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1년에 10퍼센트 정도였어요. 지금과 비교하면, 4년 동안 성장할 것을 한 해에 이룬거죠. 그리고 교육의 기회가 넓어지면서 우린 세대 대부분은 부모 세대보다 더 공부를 많이 했어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확신이 있었어요. 우리는 부모 세대보다 더 부유할 것이고, 문화적으로 더 풍요로울 것이고, 더 많은 지식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었죠. 그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이었어요. 실제로 그렇게 됐고요. 그런데 요즘에는 자신의 부모보다 더 잘살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부모가 가진 것만큼이라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죠. 지금의 부모 세대는 대부분 대학을 나왔고, 30대 즈음에는 아파트와 자동차를 샀고, 풍요를 누렸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그 단계에 도달하기란 굉장히 어렵죠. 취업을 하기도 어렵고, 취업을 한다 해도 돈을 모으기도 어렵고, 집을 사기도 어렵고요. 그런 게 우리 세대와는 다른 점이죠. 이건 사실 딱히 누구의 잘못이 나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우리나라가 예전에 갖고 있었던 경제적인 활력은 사라져가고 있잖아요. 인구도 곧 줄어들기 시작할 거고요. 또 우리만이 갖고 있는 특별한 무언가도 이제는 없는 듯 해요. 그래서 희망이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14페이지

세대 갈등이란 표현이 너무 자연스러운 시대가 되었다. 최근에는 70년 생 전후가 가장 축복받은 시대였다는 말도 한다. 현재 가장 각광받고 있는 시대가 90년을 전후로 한 시대인데 그 당시에 가장 빛나는 청춘을 보낸 세대다. 그렇다고 그 당시에 아무런 고민도 걱정도 없이 즐겁고 행복하게 살았냐하면 그건 아니다. 시간이 지나 그때만큼 좋았던 시절이 없었다는 추억으로 각색된 것도 많다. 실제로 경제성장률이 높았고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진취적인 정신이 많았느냐고 묻는다면 당시에는 몰랐다.

내 학창시절엔 부모들이 잘 몰랐다. 지금 부모들은 자녀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와 하고 있는지를 충분히 예측한다. 많은 점에서 다르다고 하지만 우리가 겪은 학창시절과 큰 차이는 없다. 그러다보니 어떻게 해야 하는줄 몰라 냅뒀던 우리 부모세대와는 달리 지금 학생들은 부모의 눈에서 벗어나기 힘든 답답할지도 모른다. <말하다>에서도 반항을 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아이들이 너무 똑같다고 하는데 맞다. 획일화가 갈수록 심해지는 이유다. 차라리 부모들이 몰라야 하는데 말이다. 그런데, 위에 언급한 대로 30대 즈음에 다들 아파트와 자동차를 샀고 풍요를 누렸는지에 대해서는 난 아니다. 그렇다면 이것도 일반화의 오류아닐까. 또는 내 일반화의 오류.
마흔이 넘어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친구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거예요. 잘못 생각했던 거죠. 친구를 덜 만났으면 내 인생이 더 풍요로웠을 것 같아요. 쓸데없는 술자리에 시간을 너무 많이 낭비했어요. 맞출 수 없는 변덕스럽고 복잡한 여러 친구들의 성향과 각기 다른 성격, 이런 걸 맞춰주느라 시간을 너무 허비했어요.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이나 읽을 걸. 잠을 자거나 음악이나 들을걸. 그냥 거리를 걷던가. 20대, 젊을 때에는 그 친구들과 영원히 같이 갈 것 같고 앞으로도 함께 해나갈 일이 많이 있을 것 같아서 내가 손해 보는 게 있어도 맞춰주고 그러잖아요. 근데 아니더라고요.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은 많은 친구들과 멀어지게 되더군요.
그보다는 자기 자신의 취향에 귀기울이고 영혼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드는 게 더 중요한 거예요. -39페이지

아마도 고등학생 때이다. 아버지가 나에게 "친구가 중요하겠지만 좀 더 시간이 지나 크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라고 이야기하셨다. '나중에는 그럴지 몰라도 지금은 아닌데요.'라고 난 속으로만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이미 20대부터 난 친구들이라면 죽고 못 사는 성격이 아니었다. 만나면 만나고 안 만나면 안 만나고. 이제는 더더욱 친구들을 만나지 않고 있다. 일부러 안 만나는 것이 아니라 외국에 간 친구도 있고 상황상 못 만나는 친구들도 있다.

어릴 때부터 함께 알고 지낸 사이니 언제 만나도 편하겠지만 이제는 서로 달라지만큼 이야기는 겉 돌수있다. 차라리 잘 모르지만 블로그로 만나 서로 댓글을 주고 받으며 상대방 글을 읽으며 알게 된 사람과 더 많은 이야기와 상대방과 친하게 처음 만나도 지내게 된다. 서로 얼굴을 본 적이 없어도 이미 상대방의 글을 통해 나와의 접점을 알고 부담없이 편하게 허삼탄회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친구와 멀어진다는 이야기라 표현할 수도. 친구는 아니지만 더 가깝고 편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생긴다.

기본적으로 술을 하지 않고 만나는 사람들도 대부분 깔끔하게 만나 대화를 하고 헤어지다보니 편하다. 더구나 만나는 사람들도 술을 하더라도 서로가 상대방을 존중하고 술이라는 매개체를 이용해서 대화를 하려는 경우가 많다. 덕분에 술자리라 하더라도 적당히 서로 조금씩 조절하며 마신다. 여전히 친구들과 자주 만나는 사람들이 더 적다. 대부분 친구와는 이제 만나지 않고 살아간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 사람은 변한다. 


그렇다기보다는 본성인 거죠. 저는 문학이라는 게 써도 되는 것만 쓰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써서는 안 될 것 같은 것을 써오면서 확장되어온 게 문학의 역사잖아요. 옛날에는 아주 고상한 얘기만 쓰는 게 문학이라고 생각했지만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작가로 활동하면서 영역을 넓혀왔어요. 어떤 작가들은 자기 내면으로 깊이 파고들어가서 계속해서 한 가지 주제에 천착하는 반면, 저는 탐험가에 가까운 작가예요. 아직까지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은 영역이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그것을 쓰고 싶어요. '왜 그건 문학이 될 수 없단 말인가' 이렇게 생각해요. '왜 그런 얘기를 쓰면 안 된단 말인가' 싶은 거죠. 흥미로운 주제를 가진 소설로 쓰기에 부적합한 소재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해요. -147페이지

그나마 능력있는 김영하 작가와 달리 딱히 베스트셀러를 내 놓은 적 없는 나도 늘 새로운 종류의 책을 쓰려 한다. 이미 쓴 것과 비슷한 내용의 책은 쓰고 싶지 않다. 소설과 달리 분야 자체도 다르다보니 나란 사람의 중심이 다소 애매할 수 있다. 어느 한 분야에 포커스를 해서 나란 인물의 확실한 정체성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측면은 존재한다. 그래도 난 그러고 싶다. 특정 부분을 파고 또 파서 전문가가 되는 것이 훨씬 고귀하겠지만 여러 부분을 다루면서 쉽게 알려주고 싶은 측면이 더 강하다.

사람들에게 선택받고 좋아하는 내용은 이미 있는 내용을 다르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게 참 힘들다. 어차피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얼마나 익숙한 것을 참신하게 보여주느냐가 핵심이다. 이게 맞아 떨어질 때 많은 사람들에게 선택된다. 그런 점에서 내가 쓴 책은 익숙한 것은 성공했지만 참신한 것은 실패하지 않았나 스스로 돌아본다. '원 히트' 저자보다는 계속 발전하는 저자가 나에게는 더 만족스러운 역할이다. 물론, 단 한 번이라도 '원 히트'를 아주 크게 했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난 계속 쓰고 또 쓰면서 사람들에게 선 보일 것이니. 크게 하나가 히트하면 부담이 많아지고 생각이 커 질수 있어도 고맙고도 황송하게 받고 늘 그렇듯이 쓰고 내면 된다. 지금은 그저 꿈같은 꿈이다.


<말하다>는 가벼운 수필같은 내용부터 무거운 국가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온다. 그 모든 걸 전부 발췌해서 전부 하고도 싶었지만 넘 길어질 듯 하여 멈췄다. 현대를 살아가는 소설가는 시대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 나눠 가질 수밖에 없다. 또는 가상으로 만들어 전달한다. 김영하 작가의 작품을 읽었는데 다행히도 책에는 내가 읽은 <빛의 제국> <너의 목소리가 들려> <살인자의 기억법>이 자주 나와 이해하는데 좀 더 좋았다. 역시나 작가의 책을 읽어야 보다 그를 이해하는데 쉽다.


까칠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말이 넘 많은 거 아님?
친절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여러모로 들을만한 말이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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