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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부르는 매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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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너란 한국 말로 하면 예의라고 할 수 있다. 이걸 뜻풀이를 보자니 행동하는 방식이나 자세라고 한다. 일상 생활에서의 예의나 절차라고 써 있다. 그렇게 볼 때 살짝 애매하긴 해도 역시나 예의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듯하다. 예의를 상대방에게 제대로 하는 점이 중요한다. 이건 내가 상대방에게 전달할 때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이 받는 마음도 중요하다. 어쩌면 더 중요할 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무리 예의있게 행동했다고 해도 상대방이 그렇게 느끼지 않을 수 있다. 그건 내가 매너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매너는 솔직히 배워야 한다. 인간과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게 사람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다. 지역이나 집단에 따라 미세하게 다를 수도 있다. 그렇기에 당연히 나는 상대방을 매너있게 행동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이러니 이게 참 어렵다.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할 수 있는 매너가 있겠지만 말이다. 그런 점 마저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비근한 예로 약속 시간이다. 이건 매너 중 매너라 할 수 있다. 바쁜 사회에서 늦을 수 있다. 그건 솔직히 나도 그러니. 중요한 건 처음 만나는 사람과 약속 시간을 늦는 것이다. 서로 몇 번 만나 친해진 상태에서 하는 행동이 아니다. 첫 대면에 그렇다면 상대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아마도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할 듯하다.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있다면 약속 시간에 최소한 늦지 않는게 매너다. <돈을 부르는 매너>에도 나온 것처럼 늦는다면 미리 양해를 구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도 상대방과 한 약속 시간에서 5분 이상 늦는다면 무례하다고 할 수 있다. 10분을 늦는다면 거의 매너가 똥이라고 표현해도 되지 않을까한다. 이처럼 매너는 상대방에게 내 이미지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중요하다. 내가 가진 것이 하나도 없는데 매너도 나쁘다면 어떻게 될까? 보나마나 다시는 기회도 얻지 못할 듯하다. 안타깝게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없을수록 더 매너를 배우고 매너있게 행

크로노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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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그런 생각을 최소한 한 번 정도는 했을 것이라고 본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워낙 자주 나오는 내용이라 나도 모르게 하게 된다. 내가 만약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면 어떨까. 내가 죽지 않고 게속 새로운 인생을 거듭해서 살아간다면 어떨까. 이걸 인도에서는 윤회라고 표현한다. 수십번 거듭 태어나서 살게 되는 걸 말한다. 알기로는 윤회는 꼭 인간으로 태어나는 건 아니다. 내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에 따라 다시 태어날 때는 곤충이나 동물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착하게 살아야만 다시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다. 보통 작품에서는 그렇지는 않다. 대체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끊긴 인연을 연결하기 위해 반복해서 살아간다. 또는 과거 특정 시점으로 간다. 이걸 이제는 타임슬립이라고 한다. 미래로 가는 건 과거와 달리 이제 거의 나오질 않는다. 아마도 그건 미래는 현재를 변화시키면 얼마든지 변경할 수 있기 때문일 듯하다. 타임슬립 소재로 된 작품은 대다수 재미있다. 익숙하지만 이걸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관건이긴 하다. 타임슬립이 재미있는 건 재미없는 타임슬립 작품은 소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대 자본이 들어가는 드라마와 영화에서는 걸러지기 때문이다. 반면에 소설은 다르다. 소설은 그 정도로 거대 자본이 들어가는 건 아니라 재미없는 작품이 나올 수도 있다. 내가 많은 소설을 읽지 않아 재미없는 타임슬림 작품을 읽은 기억은 없다. 이번에 읽은 <크로노토피아 : 엘리베이터 속의 아이>도 재미있었다. 초반에는 살짝 이게 뭔가 했다. 어떤 소재와 형식인지 모르고 읽었기 때문이다. 책을 쓴 작가와 친분이 있어 보내줘 읽었다. 한동안 연락이 전혀 되질 않아 궁금했다. 작가에게 연락이란 그다지 대단하지 않다. 새로운 작품이 나오면 연락이 온다. 그거면 된다. 그렇게 새로운 작품이 세상에 선보였다. 이번에는 지금까지 쓴 장편소설과 달리 다소 가벼운 이야기였다. 보통 무거운 소재로 형사물이라면, 단편은 가벼운 청소년 물을 쓰던 작가였다. 이번에는 장편인데 주인공이 

헤지펀드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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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는 헤지펀드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았다. 지금도 여전히 일반인은 잘 모른다. 나도 솔직히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그저 헤지펀드는 돈 되는 것이면 다한다. 그 정도만 안다. 그렇다고 불법을 저지른다는 건 아니다. 펀드는 펀드인데 규제 등에서 좀 더 자유롭다. 이마저도 미국이 그렇다는 것이지 한국은 아니다. 한국이 금융 선진국이 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늘 금융선진국을 부르짖지만 관련 법은 전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다. 헤지펀드는 모든 금융상품에 전부 투자한다. 부동산도 투자할 수 있다. 부동산은 상대적으로 돈이 되지 않아 안 하는 듯하다. 특히나 헤지펀드는 특성상 치고 빠지는(?)걸 잘 해야 한다. 장기간 투자하는 경우도 있지만 투자한 자산이 손해가 크다든지 처음 판단과 달라질 수 있다. 이럴 때는 즉석에서 매도하고 나와야 한다. 이런 게 부동산은 아무래도 취약하다. 그렇기 때문에 헤지펀드가 직접 부동산을 매수하는 경우는 없는 듯하다. 대신에 부동산 관련 금융자산에 투자할 뿐. 헤지 펀드는 그렇게 볼 때 돈이 된다는 건 투자한다. 주식을 기본으로 채권이나 파생 상품, 공매도 등을 전부 이용한다. 헤저 펀드를 운용하는 입장에서 자신들이 갖고 있는 아이디어에 부합하면 보유 현금을 투입한다. 자신이 생각한 바가 맞는지 틀린지를 돈으로 확인하는 과정이다. 맞으면 돈을 버는 것이고, 틀리면 돈을 잃는다. 돈을 벌 수 있고, 잃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보통 비교지수보다 잘 하면 성공이다. 이런 헤지펀드가 그렇게 많은 건 또 아니다. 헤지펀드 속성상 대부분 작은 돈보다는 큰 돈을 받아 운용한다. <헤지펀드 열전>은 미국에 있는 헤지펀드에 대한 이야기다. 헤지펀드를 운용한 사람들을 인터뷰와 다양한 조사와 함께 저자가 설명하는 방식이다. 대체적으로 미국에서 유명한 펀드 매니저는 헤지펀드 운용자다. 한국에 소개된 미국 펀드 운용하는 유명 투자자가 대부분 그렇다. 그러다보니 특정 자산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하게 운용한다. 한편으로는 이걸 개인이

수평적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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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제목인 <수평적 권력>은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수평적인 권력이 있을 수 있을까. 책 제목이 수평적 권력이니 가능하다는 주장을 펼친다. 흔히 칼은 칼집에 있을 때 가장 무섭다고 한다. 칼이 칼집에서 나오는 순간 더 강력한 힘을 얻는다. 대신에 그 힘을 순간이고 오래가지 못한다. 잠시 힘을 쓰고 칼이 갖고 있는 효용성은 사라진다. 칼을 잘 활용하면 칼집에 있을 때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긴 한다. 대체적으로 그건 공포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칼이 칼집에 있어도 어느 정도 공포스럽지만 좀 다르다. 조마조마하면서 긴장하게 된다. 언제 칼을 뽑을 지 모르기 때문이다. 권력을 가진 자는 어지간해서 자신이 갖고 있는 권력을 나누려 하지 않는다. 권력을 나누는 순간 자신에게 힘이 사라지거나 잃는다고 바라본다. 과거에는 강력한 권력이 힘이였고 리더에게 필요한 자세였다. 최근에는 다소 달라졌다. 리더가 권력을 독점하는 걸 별로 좋게 보지 않는다. 그보다는 힘을 분산할 때 오히려 좋은 리더라고 칭찬받는다. 솔직히 그렇다고 해도 권력은 결국에 권력자가 갖게 된다. 이걸 나눌 수 있어도 여전히 권력을 유지해야 한다. 수평적 권력이 가능하다고 보진 않는다. 권력은 결국에는 수직적 관계라고 생각한다. 책에서 알려주는 내용에 동의해도 말이다. 권력에 대해 다소 거창하게 이야기했지만 누구나 권력은 갖고 있다. 상대방과 상황과 위치에 따라 저절로 권력관계가 작동한다. 두 명 중에 한 명이 좀 더 권력을 갖게 된다. 이걸 꼭 의식하거나 인식하지 않더라도. 권력을 신경 쓸 수도 있고, 무시할 수도 있다. 어떤 집단의 장이라면 모를 수가 없다. 이럴 때 권위의식을 내세우는 건 자신이 갖고 있는 권력을 보여주려는 의도다. 분명히 과거와 달리 이런 사람들이 많이 줄긴 했어도 여전히 꽤 있다. 그게 뭐 권력이 갖고 있는 매력이다. 권력을 갖게 된 사람이 자신에게 온 힘을 줄이려고 할 이유는 별로 없다. 오히려 내세우기 싶어 안달이 난다. 그러니 이걸 내세우지 않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