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나의 다정입니다 - 일기


재미있는 것 중에 하나가 타인의 일기 훔쳐보기다. 그것도 가장 재미있는 것은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쓴 일기를 보는게 아닐까. 일기보는 것이 왜 재미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남에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걸 일기에 쓰는 것이 아닐까. 일기를 쓴 당사자는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은 내면의 이야기를 일기에 쓰는 경우가 많다.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타인의 일기는 언제나 호기심의 대상이다. 억지로 보려고 하지 않아도 볼 기회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일기장을 우연히 본 적이 있다. 후배였는데 일기를 집에서 자고 놓고 간 것이었다. 지금이라면 안 볼 가능성도 있는데 당시는 호기심이 왕성한 중학생 때였다. 나도 모르게 손은 일기장을 향했고 어느 순간 일기장을 펼 쳐 보고 있었다. 이처럼 타인의 일기는 볼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이런 일기를 공개적으로 쓰는 사람이 많다.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일기를 공책에 쓰는 것이 아니라 남들도 보는 곳에 쓰기 때문이다.

나도 그러고 있다. 일기를 공개적으로 쓰고 있다. 가감없이 쓰고 있지만 모든 걸 밝히는 것은 아니다. 적당한 선에서 쓰고 있다. 일기를 모아 책으로 펴내기도 한다. 그런 책이 <이것이 나의 다정입니다>이다. 이 책은 저자가 스스로 밝혔다. 지난 1년 동안 쓴 일기를 모아 책으로 펴 낸 것이라고 말이다. 처음부터 그럴 작정을 쓴 것인지 쓰고나서 책으로 펴 낼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진짜 일기였다면 이렇게 썼을까라는 생각은 한다.

일기란 남에게 하는 이야기가 아닌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다. 일상을 이야기하기도하고, 감정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상황을 이야기도 한다. 대체적으로 남을 의식하지 않고 쓰고 싶은 내용이 일기다. 일기가 확장된 것이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 내용은 단순히 일기라고 하기에는 힘들다. 에세이가 좀 더 가깝지 않을까한다.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1년에 걸쳐서 꾸준히 썼고 이를 바탕으로 책으로 펴냈다.
글이란 무엇인가 특별한 걸 반드시 써야 하는 건 아니다. 소소한 일상을 써도 충분히 재미있다. 어떻게 매일같이 익사이팅한 날을 지낼 수 있단 말인가. 하루 종일 집에서 뒹글거리며 보내는 날도 있게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무료한 일상에도 충분히 글은 쓸 수 있다. 그걸 어떻게 표현하고 관찰해서 쓰느냐에 달려있다. 똑같은 사물을 보고 사람마다 다른 이야기를 하기 마련이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다고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거창한 내용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상에서 생각하고, 추억에 잠기고, 흐믓한 일은 얼마든지 있다. 누구에게도 시시한 하루는 없다. 그런 시간이 쌓여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기 마련이다. 책에 시시한 일요일이라는 내용도 있다. 내 경우도 이상하게 일요일에 더 바쁘지만 유독 여전히 머릿속에 떠나지 않는 인상이 있다. 그 날은 정말 무료했고 할 일도 없고 집에서 멍 때리고 있었다. 아무 생각없이 TV를 보고 있었다.

그런 날이 여러 번 있는데 한 번은 그러다 우연히 보게 된 드라마가 너무 좋았다. 당시의 분위기와 드라마 느낌은 여전히 이상하게 날 떠나지 않고 있다. 또 한 번은 의자에 누워 또 다시 멍하니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루게릭병 걸린 환자의 다큐를 보게 되었다. 무척이나 날이 밝았고 햇살은 집 안 가득히 빈 틈을 주지 않고 비췄다. 묘한 부조화였다. 나는 너무 따뜻하고 편한 환경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때우고 있는데 TV다큐에서는 사투를 벌이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

책은 아주 길게 쓴 내용도 있고, 짧고 굵게 쓴 내용도 있다. 그런 내용이 하나씩 읽어가며 저자에 대해 알게 되고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책에서 설명하기를 하루키가 에세이 쓰는 원칙을 자신도 모르게 지킨다고 한다. 남의 악담을 구체적으로 쓰지 않기. 변명과 자랑은 되도록 쓰지 않기. 시사적인 화제는 피하기. 저자도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쓴단다. 생각해보니 나도 그런 듯하다. 다만 이렇게 쓰면 대부분 쓸데없는 이야기가 되기 쉽상이란다.

이러면서도 무엇인가 글을 계속 쓰는 것도 사실 쉽지 않다. 늘 무엇인가 쓴다는 것은 결코 웃으면서 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다. 쓰다보면 어느 날 쓸 말이 없다. 그럼에도 쓴다.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닐까. 책은 여러 가지 내용을 담고 있지만 가볍고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심각한 표정으로 읽을 필요없이 잔잔한 미소를 짓고 읽으면 된다. 아마도 이 책에서 언급하고 나에게 알려준 정도까지가 저자가 갖고 있는 다정이 아닌가한다. 

증정받아 읽었습니다.

까칠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무슨 일기를 이리 잘 써.
친절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일기는 훔쳐보는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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